"지금 저희가 간절히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저희를 위해 기도하시며 흘리시는 부모님의 눈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만 우세요. 그 대신 활짝 웃으시면서 '너희들은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힘주어 격려해주시고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제19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서 장애자녀를 대표한 인천 연일학교의 고등부 2학년인 김인원 학생이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 중의 한 대목이다.

역시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고 당당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속도도 느리고, 하는 짓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애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속상하고 황당한 가슴을 향해, "이제는 그만 우세요.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웃음과 격려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당당함이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럽다.

나도 첫돌 지나고 일어서지 못하게 되고 말았으니 나를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쏟았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 우리 엄마는 고운 한복을 꺼내 입으시고 함께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부실한 나를 지켜보는 것이 보호하는 것이라고 여기심인지 엄마는 내 옆에서 나란히 걷지를 않으시고 꼭 뒤에서 따라오시곤 하셨다. 그 때 들려오던 엄마의 무너지는 한숨 소리.

뒤에 백일장 대회나 읍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같이 동행하는 날도 엄마는 여지없이 내 뒤를 밟아오시며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그것이 너무 슬프고 미안하고 괴로워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크면 엄마 곁에 살지 않으리라고 결심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내 뒷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목발을 짚고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슬픔과 괴로움을 읽어 가는 것 같았다. 더구나 내가 사랑하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수록 내 뒤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죽기만큼이나 싫었다.

나만의 편견이 섞인 시각인지는 몰라도, 장애인 중에서도 활발하게 사회 전반에 나서서 일하는 분 중에는 중도 장애인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그 이유가 어떠한 어린 시절을 보냈느냐에 따른 문제라고 여겨진다.

중도 장애인의 어린 날은 적어도 주위의 동정 어린 시선, 부정적이고 눈물어린 시선 속에서 움츠리고 좌절된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간에 장애인이 된 좌절감만 극복할 수 있으면 더 큰 용기를 내어 새로운 삶을 시작해볼 수 있는 용기가 막힘 없이 이미 세포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아주 어린 시절에 장애가 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던 무방비의 어린 날에 주변에서 심어준 부정적인 힘이 너무 주눅들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갓난아이부터 4살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평생을 이어갈 성격이 거의 다 형성된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아주 어린 날에 심어진 부정적이고 슬픈 씨앗은 너무 깊숙이 세포 속에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이걸 철이 들면서 극복해내려면 너무나 많은 노력과 힘이 필요해진다.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내리는 것 같다. 바깥에 나가는 일,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 등, 아주 단순한 일 하나를 치루어 내기 위해서도, 수없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고, 포기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수없이 다져야만 한다.

나도 스스로의 열등감과 부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지 많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나는 아름답다. 나는 우주적으로 아름답다!!!" 고 목에 피가 쏟아지도록 외쳐보기도 했고, 자신을 극기하기 위한 수련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엉금엉금 기어보기도 했다. 나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아 있는 생도 제대로 살아낼 수 없으리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제는 누가 나를 쳐다보아도, 내가 예뻐서 그러려니~ 하는 착각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뒤에서 따라와도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고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내야만 했다.

어떤 중증의 장애인일지라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긍정적인 웃음과 격려일 뿐이다. "세상의 관점이 어떠할지라도 네 인생은 네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선택하는 것이다" 라고 힘주어 말해줄 수 있는 배짱 두둑한 부모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 아이가 정상인이 될 수만 있다면 내 평생을 바치고 또 바치겠다"라고 눈물겨운 희생심을 발휘하는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무엇이 이 사회 속에서 정상인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부모님들께 부탁드리고 싶다.

그 누구도 존재의 절대성 앞에서 비정상인이란 있을 수가 없다. 단지 지금 통용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 편리하고 불편한 조건으로 나누어질 뿐이다. 불편한 사회구조를 편리한 조건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나 힘이 없다면 불편함 속에서라도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배짱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은 여린 아이일수록, 그리고 장애가 심하고 장애가 어려울수록 더욱 더 간절하게 필요한 부모의 커다란 지원이다.

눈물이나 한숨은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지워버리는 표현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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