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인 건강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건강이다.

아무리 몸이 건강하다고 해도 정신적인 상태가 불안하고 쫓기는 듯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몸이 무너지는 일은 시간문제다. 특히 나처럼 몸이 좀 약한 사람은 더더욱 내적인 평화와 자긍심이 필수적이다.

이걸 거꾸로 말하면, 몸이 아무리 허약하다고 해도 정신적인 평화로움과 온유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몸은 저절로 이러한 마음을 따라오게 되어 있다.

몸이 상쾌하고 가벼운 날은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고 활력도 생기지만, 몸이 아프고 찌부등하면 저절로 위축되고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처럼 대부분 마음은 몸을 따라가게 되어 있지만 강력한 정신은 반대로 몸을 따라오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대체의학의 여러가지 방법을 접하고 풍욕을 시작했을 때, 이런 운동이 끝나고 나면 가부좌 자세를 하고 앉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대체의학 현장에서는 이 방법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좌우의 균형과 상하의 균형, 그리고 정신과 몸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방법은 척추를 곧게 펴고 똑바로 앉아서 두 팔을 쭉 뻗어 머리 위에서 합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40분을 견디고 있으면 균형이 맞추어져서 몸의 기능이 최고도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게 장난이 아니다.

지체장애인들의 대부분이 상반신을 무리하게 쓰고 있기 때문에 어깨가 단단하게 굳어 있고, 또 머리로만 온통 기가 몰려 어깨와 목이 돌처럼 경직되어 있는데 40분간이나 팔을 들고 있으라고 하면 벌 중에 그런 중벌이 따로 없다. 더구나 허리힘이 약하다면 더더욱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이렇게라도 회생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라는 절박감 때문에 이를 악물고 앉아 있곤 했다. 이 때 오른쪽 턱인지, 귀인지, 하여튼 얼굴 뒤쪽에서 뼈 마주치는 소리가 딱, 딱, 딱 나곤 했다.

나는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다리뿐만 아니라 몸 오른쪽의 기능이 다 나쁜 것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턱도, 입도, 귀도, 어깨도, 옆구리도 다 오른쪽의 상황이 불편했다. 심지어는 치질까지도 항문의 오른쪽이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머리 위에서 합장을 한 채로 10분을 넘기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뒤에는 절을 하는 것처럼 양팔을 옆으로 활짝 펼쳐서 위로 올려 머리 위에서 합장을 하고 천천히 복부까지 내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렇게 팔을 넓게 펼치자면 자연히 아랫배와 흉부가 크게 열리게 되고 그 팔을 위로 높이는 중에는 옆구리가 쭉 펴지면서 허리의 균형이 잡아진다. 그리고 그 팔을 천천히 내리는 중에 아주 깊은 숨을 내쉬게 되면서 고요해지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보면 아주 고요한 상태에 머물게 되면서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환하게 들여다보여진다.

어쩌면 너무 많은 상념들이 파도처럼 다가오는 것이 보일 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것은 아니야, 그것은 잘못되었어. 그건 현실에 도움이 안돼, 라고 스스로 부정하고, 숨기고, 억압했던 온갖 기억들이 다 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기억해 줘... 나를 사랑해 줘....라고 매달릴 지도 모른다.

눈물이 나고, 오열이 쏟아질 지도 모른다.

정말 자신한테 정직할 수 있다면, 정직하고 싶다면, 이제는 더 이상 부정적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이 오열의 정도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울고 또 울었다.

여태까지 나도 모르게 억압되어 있던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고, 억울해서 울었고, 허무해서 울었다.

그러나 실컷 울고나면 자신이 한없이 사랑스러워진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생명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부정하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은 한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었다, 라는 각성된 희열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가슴이 열 개 있어도 이 희열을 다 채워 넣을 수가 없어서 이제는 허덕일 정도였다. 너무나 큰사랑 때문에, 너무나 큰 기쁨 때문에 이제는 다시 눈물이 철철철 흘러 넘쳤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성스럽게 돌보아지고 쭉 펴진 몸은 이미 좋아지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이 이상하게 여겨지거나 싫은 사람이라면 이 과정을 빼버려도 좋다.

다만 몸의 운동이 끝났을 때, 벌떡 일어나서 찬물에 손을 넣거나 격한 움직임을 하기보다는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잠깐 들으며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다. 음악도 무겁고 우울한 것보다는 밝고 경쾌한 것이면 몸이 더 산뜻해진다.

가까운 친구 중에 신장염이 걸려서 혈액투석 직전까지 갔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 이 친구가 했던 일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그건 자신의 장롱을 뒤적여서 쓰지 않는 물건을 다른 사람들한테 나누어주던 일이었다. 유치원 일을 20여년 해오던 이 친구는 모아놓은 선물, 상품권 등등이 많았는데 이런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과도 화해를 했다.

병이란 넓게 보면 소통되지 못하고 적체되어서 썩는 것이라고 이 친구는 이해를 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의 소통. 의식과 무의식의 소통. 나와 이웃간의 소통.... 이 모든 원활한 소통이 결국 저하된 몸의 기능을 도와줄 것이라고 이 친구는 굳게 믿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이던 이 친구는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성당의 꽃꽂이는 자신의 손으로 하겠노라고 하나님께 서약을 했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금은 병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주 활동적이고 멋진 여성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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