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그믐이라고 생전 안 먹던 야참까지 먹고 등 긁어달라고 남편 앞에 앉았다가 은근슬쩍 무릎에 감겼더니 아구구, 팔 아프고 손가락 아퍼!!! 엄살을 부려서 나는 그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 남편은 잠귀가 예민해서 옆에서 뽀시락 거리는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고, 그 다음부터는 잠을 못 이뤄서 발가락을 만져라, 발바닥을 때려라는 둥 주문이 많다.

나 역시 알러지 비염 때문에 선잠이 깨면 콧물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잘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부부니까~ 줄기차게 한 방을 썼지만 재작년 말에 이사를 하면서 각각 자기 방을 차렸다.

그러고 나니까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남편은 잠이 들 때까지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는데 비해 그걸 못 견뎌하던 나는 혼자서 마음 놓고 명상을 하거나 손이 가는 대로 간단한 그림을 그리거나 때로는 스트레칭까지 하면서 홀가분하게 마음대로 잠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침 자정이 다 된 그 시간에, 부지런한 지인들의 신년 축하 메시지가 핸드폰으로 몇 개나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언제나 내일로 미루면서 새해 카드는 물론이고 메일 하나 보내지 못했는데, 덕분에 한가해진 나는 핸드폰 저장 전화번호를 찾아서 새해인사를 띄우기 시작했다. 어려운 분이거나 이야기가 좀 길어져야 될 분을 빼고나니깐, 한 서른 분 정도의 명단이 나왔다.

먼저 감사와 사랑을 담은 문자 메시지 내용을 두세 가지로 작성해놓고 받는 분에 따라 한 두 마디씩만 바꿔가면서 보내니깐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다 할 수 있었다.

아, 좋은 세상!!!

새해 인사 카드에 정성스러운 내용을 담고 글씨를 직접 써서 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마음먹고 앉아지지가 않아 이래저래 미루다가 놓치기 십상인데, 가장 핵심이 되는 1월 1일이 시작되는 자정 무렵에 가까운 분들을 떠올려가며 문자 메시지를 날려보내는 것도 나름대로 산뜻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아들한테도 메시지를 보내고 만족한 기분으로 새해를 떠올리면서 마음과 손이 가는대로 색연필 그림까지 한 장 그렸다.

그리고 잠이 든 것이 두 시 무렵이었다. 잠결에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저거 아빠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그냥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괜찮을거야~ 그러면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문자 메시지가 몇 개나 더 들어와 있었다.

눈이 떨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확인하고 확인하면서 메시지를 읽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들이 보낸 것이었다.

“으음, 엄마 구박하지 않으께요. 아~ 배 아퍼!!!”

새벽 4시 5분에 찍힌 것이었다. 그럼 화장실 들락거릴 때가 그 시간인 것 같았다.

내가 아들한테 보낸 메시지는,

“단이야 한 해 동안 건강하고 잘 자라줘서 고마워. 새해에는 이 옴마 쫌 구박하지 말고 마니 마니 사랑해주~~~”

이 아드님이 내가 컴퓨터 잘 못한다고, 가르쳐줘도 또 잊어먹는다고 엄청 구박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내가 삐져서는, “새꺄!!! 니가 안 가르줘도 돼.” 화를 벌컥 내놓고는 쬐끔 지나면 또 허벌레져서 희희락락 하기 때문에 울아들이 이 지엄하신 어머니를 제 동생쯤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기분이 나빠져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생의 역할을 기꺼이 감내해준다. 형도 동생도 없는 외톨이인데다가, 아빠는 좀 엄격한 편이고, 그렇다고 친척이나 이웃끼리 자주 들락거리는 집 분위기도 아니어서,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마음을 분출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엄마와 아들간의 둘도 없는 유대감이 그런 정도로 왜곡되거나 상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확실한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아들 방문을 열어보니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쌀을 씻고 아들이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북어국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도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늦은 시간에 야참을 먹은데다 아들도 잠들어 있으니 구태여 아침을 꾸역꾸역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걸레질을 시작했다.

거실바닥을 닦아 나가다가 남편 핸드폰을 보니깐 거기에도 문자 메시지가 몇개나 들어와 있었다. 아들은 즉각적으로 답을 보내 줬는데, 이 양반은 들어온 줄도 모르다니,,, 싶어서 나는 남편한테 소리쳤다.

“문자 메시지 들어와 있네!”

앞에 떠 있는 걸 얼핏 보니까 이모티콘이 요란뻑적지끌하게 들어와 있다. 이 정도면 동년배의 친구는 아닐 것 같은데.......

"누구야?“

“글쎄, 누구지?”

흥! 누구라면 질투할까봐? 나는 입을 비죽대고는 계속 걸레질을 해나간다.

“사랑하는 친구여.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그가 큰 소리로 다른 메시지 하나를 읽어나가자 그새 잠이 깬 아들이 아는 척을 한다.

“그건 진태네 아저씨꺼구”

진태 아빠는 남편의 친한 친구이다.

“여자한테 온 건 없어?”

나는 주방바닥을 닦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없어!”

남편이 대뜸 한마디로 못을 박는다.

“아니, 저 나뿐 인간!!!”

지난밤에 좋은 분들한테 새해 인사를 많이 받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오만해진 나는 오버를 한다.

“그러게, 나쁜 년들!!!”

오잉, 점점 더 과장되어가는 분위기.

“나쁜 년이라니? 나쁜 놈이지”

나도 한 술 더 떠서 한 마디를 팩, 던졌다.

“여보, 지난 한 해 동안 다정하게 대해줘서 고마워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구 더 금슬 좋은 부부가 됩시당”

다정하긴 개뿔이 다정혀? 그래도 내가 고러코롬 다정한 메시지를 보냈는데, 뭐가 어쩌구 저째? 여자가 없어?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니고 뭐란 말이야!!!

심약한 것이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 수 있는 (^---^) 나는 밸도 없이 다시 물었다.

“나한테서 들어간 것 없어?”

“없는데.......아니, 아예 보고 싶지도 않지”

허걱, 저 대단하신 경지! 하긴 우리 남편의 오만함은 이미 어떤 절대치에 도달한 상태이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지존의 경지.

그래 잘 먹고 잘 사슈!!!

그의 잘난 기운에 굴복당한 나는 북어국을 끓이기 위해 참기름에다 명태포를 들들들 볶는다.

그 동안에 그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의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눈에 보이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흘러가버리는 저 무상한 음악, 그리고 세월.......

그러나 그것들은 그의 손끝과 내 마음에 실려서 흐느적거리며 회한과 원망과 무거움을 털어내고 고요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새해를 바라보며 올 한해도 씩씩하게 출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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