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송도의 한 카페에서.

“여보세요. 형희니. 나, 진희. 요즘 뭐하니. 뜨거운 물에 데인 자리는 다 아물고….”

“ 응, 언니. 언니는 요즘 뭘 해. 여전히 바쁘지.”

“ 응. 그렇지 뭐.”

형희는 173cm의 키 크고 예쁜 아가씨다. 아니 아줌마다.(얼마전 결혼을 했으니까.) 성균관대 무용학과 재학 중 교통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맞았지만 지금은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1992년 3월 어느날.

뜻하지 않는 교통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 사고로 좋아하던 무용도 포기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림으로서 못다한 꿈을 ‘날개 짓’ 하고 있다.

교통 사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형희는 무대를 훨훨 날아다니는 새와 같았다고 한다. 대학에서 현대 무용을 전공 하면서 지금은 해체된 ‘서희 앤 댄서스’의 단원으로도 활동 했었고, 패션 모델일도 했었다. 그러나 두 오빠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막내 형희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 회 모임에서 여고 동창생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바래다 주는 차를 타고 가다 그만 운명이 바뀌고 말았다.

면허를 딴지 한달 밖에 안된 여고 동창생의 남자친구의 운전 미숙. 중앙 분리대를 들이 밖고 차는 붕떠서 나뭇가지에 걸렸다. 안전 벨트도 하지 않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형희는 차밖으로 스프링 튕기듯 튀어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

형희는 이렇게 한 순간의 ‘아차’하는 사고로 경추 5번과 6번 손상으로 인해 “전신 마비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의 특유의 낙천성일까. 항상 겸손하며 환한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언니, 내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야. 언니가 미대를 나와 미술학원을 운영하다가 사고가 나서 지금은 방송인으로 작가로 글을 쓰듯이 나 또한 세상을 살아 가다보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지 뭐. 어쩔 수 없는 환경과 실수로 인해서 말이야.”

형희가 캔버스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움직임을 통한 자유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움직임을 통해 자유로움을 표현하듯이 형희 또한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서 그녀만의 자유를 안무하고 자유롭게 날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떤 의미의 부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거다.

지난해 9월 4일에는 인사동 경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지금도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몇일전 새 신랑과 인천에 왔었다.오랜 시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제 대로 나누지 못한것이 아쉽다.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해하리라 생각하며….

"형희야! 가끔은 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있는 듯 없는듯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너를 좋아한다. 아프지 말고, 무대에서 못다한 꿈 화폭에서 마음껏 펼치기를 바래."

***형희는 인터넷에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소개와 자작품 그리고 미술사와 문학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다.

홈피 주소는 http:www.art70.com.ne.kr***

사람 만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칼럼리스트 김진희씨는 지난 97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를 당하기전 280명의 원생을 둔 미술학원 원장이기도 했던 필자는 이제 영세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재활보조기구나 의료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생활시설에 자원봉사로 또 '지구촌나눔운동'의 홍보이사로 훨씬 더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방송작가로 또 KBS 제3라디오에 패널로 직접 출연해 장애인계에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음식을 아주 재미있고 맛있게 요리를 할 줄 아는 방년 36살 처녀인 그녀는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deco를 운영하고 있다. ■ deco 홈페이지 http://www.uk-ortho.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