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로비에서 활짝 웃는 이지선

지난 2003년 12월 27일 오전 10시.

KBS 제3라디오에서 탤런트 정애리씨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행하는 건강365일 이라는 프로 중 '나의 재활 일기'라는 코너가 있는데, 그 프로에 한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에서 세 사람이 초청되어 출연을 하게 되었다.

KBS 2TV, 인간극장 ‘지선아 사랑해’로 유명한 화상 장애인 이지선씨를 비롯해 1급 시각장애인으론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TV 진행자가 된 잘 생긴 남자 심준구씨. 그는 세계최초의 장애인 속기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김진희. 모델 뺨치는 외모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빼앗는 매력 넘치는 여성이면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장애인 전문 카운셀러로 활동하고 있다는 MC의 소개로 함께 한 우리 세 사람은 토크쇼 방식으로 1시간 동안 진행이 됐다. 그 1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서로 시간이 짧다고 느꼈다.

방송이 끝나고 우리는 휴게실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선씨가 “언니가 일본 병원에 기증한 금관의 주인공이시죠?”하고 물었다.

“네, 맞아요. 오빠는 잘 있죠? 오빠가 정말 대단하던데요. 지선씨를 엄청 아끼는 것 같던데…”

“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함께 못 왔어요.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굴도 볼 겸….

세상 참 좁다. 왜냐하면…

내가 간접적으로 이지선씨를 알게 된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12월.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십 차례 수술한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기다리던 차에 잠시 쉬려고 찾아간 곳이 필리핀이다. 그곳에 있으면서도 열심히 홈페이지를 관리하던 나에게 뜻밖의 이메일이 왔는데 그 메일의 주인공이 바로 이지선의 오빠였다.

그 때 지선씨 오빠의 이야기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구구절절하고 가슴 아팠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해줘야 하는 그런 급박한 상황이었다.

“동생이 차 사고로 심하게 화상을 입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예전 모습을 되찾게 해주고 싶은데.. 다행히도 나는 괜찮다. 오히려 동생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해가 간다. 동생의 생명을 구했다는 안도감보다는 그 끔찍한 화상에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 때 지선씨 오빠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내 홈에 링크되어 있는 동경 대학병원의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선씨 오빠에게 필리핀에서 국제전화로 일본 동경 대학 병원 성형외과 전문의 ‘와키다 신이찌’ 선생님을 소개했다.

그 후, 얼마가 흘렀을까…그렇게 잊혀지나 보다 했는데 동네 아는 아줌마들이 “저기 있잖아, 진희씨.. 진희씨도 교통 사고 후 지금까지 잘 극복해 왔는데…우리교회에 한 아가씨가 간증을 왔어. 한번 인터넷 검색창에 '주바라기'란 곳에 들어가봐"하시는 거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 '혹시 그 사람이...' 생각은 했지만 막상 홈을 방문 해보니 그 사람이 그 사람 맞다. 세상에 이렇게 좁을 수가.

정말 다행이다. 자신에게 처한 환경을 빨리 받아들이고 잘 극복하고 밝게 살고 있다고 하니…

주바라기(http://www.ezsun.net) 홈을 방문하자마자 메일을 보냈더니 곧바로 이지선씨의 오빠에게서 "그때는 너무 고마웠다"며 "그곳에서 수술을 한번 한 후 더 좋은 곳을 소개 시켜줘서 그곳에서 여러차례하게 되었다"는 답장이 왔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오히려 내가 그에게 더 고마웠다.

나에게도 사고당시 조그마한 정보라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또 내가 찾아 헤매면서 정보를 구하려 했을 때 손을 내밀어 정보를 알려 줬더라면 아마 지금 나는 그를 평생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 몇일이라도 사회 복귀로의 재활기간이 더 앞 당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일년에 한 명도 좋고 2년에 한 명도 좋고 누군가 나한테서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알려줘야지"하고 만든 홈이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도움이 되었다니 그것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그런 이지선씨를 우연이라고 할까 필연이라고 할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장애부위는 다르지만 이지선씨를 알 수 있었고, 지선씨의 가족들과 지선씨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의 마음 또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과정들을 잘 극복해 나간 것처럼 앞으로도 지선씨의 앞날에 밝은 빛만 비췄으면 좋겠다. 지선씨는 올 3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해 재활상담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위풍당당 지선씨의 해 맑은 미소를 뒤로하며 헤어져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지선씨!! 건강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후에 좋은 모습으로 우리 사는 세상에 향기의 꽃씨를 퍼뜨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이지선”으로 다시 만나요.

사람 만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칼럼리스트 김진희씨는 지난 97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를 당하기전 280명의 원생을 둔 미술학원 원장이기도 했던 필자는 이제 영세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재활보조기구나 의료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생활시설에 자원봉사로 또 '지구촌나눔운동'의 홍보이사로 훨씬 더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방송작가로 또 KBS 제3라디오에 패널로 직접 출연해 장애인계에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음식을 아주 재미있고 맛있게 요리를 할 줄 아는 방년 36살 처녀인 그녀는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deco를 운영하고 있다. ■ deco 홈페이지 http://www.uk-or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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