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본, 추수를 기다리는 벼의 모습입니다. <임선미>

추석 전전날 아침부터 시댁으로 추석을 쇠러 가기 위해 아이들의 옷가지며 막힐 도로사정을 생각해 차안에서 요기할 김밥도 좀 싸고 차가 막힐 때 차안에서 아이들에게 읽어 줄 동화책에 장난감까지 챙겨 넣느라 마음은 바쁘기만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추석연휴가 되면 느긋하게 집에서 TV채널이나 돌리면서 어머니가 큰 집에서 가져오신 전이며 주전부리 음식을 먹거나 친구들과 어떤 영화를 볼까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던 처녀시절의 추석이 가끔은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차가 막힐 땐 14시간 만에 시골에 도착해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결혼 후의 추석연휴도 저에겐 나름대로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만들었다며(사실은 선생님이 거의 만들어 주셨겠지요) 가방 안에 넣어 온 송편 때문인지 아니면 바쁘게 짐을 싸는 제 모습을 보며 뭔가 긴 여행을 떠나는 낌새를 차렸는지 승혁이와 승혜(승혁이의 여동생입니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안 여기저기를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닙니다.

눈치 빠른 승혜는 현관 앞에 가득 나온 짐 꾸러미를 보더니 "엄마 시골 할머니?"하며 나를 쳐다봅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네 집에 가냐는 뜻입니다.

평소 자정께야 퇴근하곤 하는 아빠도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퇴근해 들어오자 아이들의 마음은 한껏 붕 떠버린 것 같습니다. 드디어 9일 저녁 8시쯤 집에서 싼 김밥으로 대강 저녁을 때우고 집을 나서며 '민족 대이동'이라는 추석 귀향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승혁이는 고속도로에 앞뒤 양옆으로 꽉 막힌 차들의 행렬을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아예 좀더 '실감나게' 보고 싶었는지 창문을 열어달라며 창문유리를 두 주먹으로 쾅쾅 두드립니다. 하지만 집을 떠날 때의 설렘도 잠시, 완전히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에서 차가 꼼짝도 못하고 서있자 가뜩이나 싫증을 잘 내는 승혁이의 얼굴도 조금씩 일그러집니다.

30분쯤 후에 조금씩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이젠 아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가려 합니다. 준비한 음료수와 과자로 겨우 아이들을 달래면서 그래도 차는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행히 얼마 전에 확장된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충주까지 한 시간여 만에 달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1시 30분 무렵에 무사히 시골 시댁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뒤늦게 출발한 다른 식구들과 이미 도착한 다른 집 친척 아이들이 모이자 마당 안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제법 시끌벅적해집니다. 어머님이 방앗간에서 멥쌀을 빻아 오시고 할머니와 어머님, 저 이렇게 일단 있는 사람 모두 둘러앉아 송편을 빚기 시작하자 승혁이도 제법 송편 빚는 일에 관심을 보입니다. 올해 여든 일곱이나 되셨으면서도 못하는 일이 없으신 시할머님께서 가마솥에 불을 지펴 빚은 송편을 찔 준비를 하십니다.

모처럼 제대로 만든 송편을 승혁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송편 빚는 솜씨가 영 아닌 제 실력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거의 다 차려진 고조할아버지 차례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차례를 지낸 후 승혁이와 승혜를 데리고 아버님댁 바로 옆 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갔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이 차긴 하지만 그동안 시골을 여러 번 왔으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산소에 간 적이 한 번 밖에 없어, 승혁이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봉긋하게 솟아오른 할아버지 산소를 보고는 무슨 놀이동산인 줄 아는지 승혁이는 냉큼 산소 위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빠와 큰아버지들이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절을 드리자 승혁이도 뭔가 '숙연한' 생각이 들었는지 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고개를 수그립니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절하는 사람 옆에서 장난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승혁이의 마음을 끈 건 차례나 산소가 아니라 산소 바로 옆에 논에 물을 대주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였습니다. 승혁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 수로 안에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승혁이는 고개를 쭉 내밀다 못해 아예 머리를 가로로 뉘이고 온 몸이 수로 아래로 빠질 지경입니다.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음식장만을 하느라 제가 눈코 뜰 새 없이 추석을 보내는 동안 승혁이는 제법 동생과도 다툼 없이 잘 놀고 마당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엄마에게 매달리는 일없이 '스스로' 잘 놀아주었습니다.

시골에 온 3일 동안 그래서 승혁이는 왠지 더 부쩍 자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아름 보내주신 명절 음식엔 늘 자식 걱정만 하시는 어머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길 옆 논에서 추수를 기다리며 토실하게 여문 벼이삭처럼 승혁이의 마음도 이번 추석동안 한껏 성숙해지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말 : 추석연휴 말미에 닥친 태풍 '매미'가 저희 아버님 댁에도 큰 피해를 주고 말았습니다. 쓰러진 벼를 세우시느라 몸살이 나셨다는 어머님의 전화통화를 들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멀리서나마 위로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