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 찍었던 사진인데 벌써 엊그제 같습니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한동안 모 디지털 카메라 광고 배경으로 인기를 끌었던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란 곡이다. 요즘 승혁이 아빠가 무척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 핸드폰에 통화 연결음으로 지정한 후 승혁이 아빠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음악이 도대체 뭐냐고 묻길래 다음날 바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곡을 찾아놓고는 아예 즐겨찾기에 <아빠방>을 만들어 주었더니 앞으로는 회사 동료들과 노래방에 가면 이 곡으로 바꿔야겠다며 한동안 컴퓨터 앞에서 맹연습을 했다.

듣기에는 감미롭고 편안한 곡이지만 막상 따라 부르기엔 음정처리도 매우 섬세하고 음폭도 큰, 꽤 까다로운 곡이라 컬컬한 승혁이 아빠의 목소리로 불리워질 땐 20평 남짓한 우리집이 떠나가는 듯 했다.

아빠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던지 처음엔 승혁이도 동생과 함께 귀를 쫑긋 세우고 제법 귀기울여 듣다가 열 번 이상 계속되자 이제 노래를 그만 부르라고 아빠 못지 않게 큰 하이톤의 비명을 지르느라 나중엔 노래인지 소음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들어 전에 없던 흰 머리가 한가닥 씩 삐죽삐죽 드러나고 옆에만 있어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따뜻하게 지켜줄 것 같았던 듬직한 체구의 남편이 피곤하고 지친 듯한 표정으로 퇴근하며 땀에 절은 양말을 벗어 던질 때 왠지 모르게 측은한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잘 외어지지도 않는 길다란 가사지만 열심히 따라하며 '열창'하는 승혁이 아빠의 모습을 뒤에서 보니 웃음이 나오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우리 네 식구의 가장으로 살아가느라 어느덧 서른 여덟의 장년이 되어버린 남편이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이라도 거칠 것 없고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자유로운 지난날의 시절로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사랑 속에서 사랑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CCM(Contemporary Christan Music)으로 널리 알려져 대중적인 인기도 꽤 얻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곡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것은 작년 승혁이의 어린이집 행사 <가족의 밤>을 통해서였다. 승혁이네 반에서는 학부모들에게 보여줄 공연으로 촛불을 들고 가사의 내용을 수화로 보여주는 공연을 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양초를 제대로 들고 있을지도 의문스러워 행여나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장애아 전담 선생님이 옆에서 승혁이와 다른 친구 2명(당시 승혁이의 반 장애아는 모두 세 명이었다)을 잘 지도해 주신 덕분에 비록 친구들 앞에서 수화동작을 지도하시는 선생님의 동작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노래음을 흥얼거리며 자신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데 신기해하면서 즐거운 듯 노래가 끝날때까지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공연의 한 '역할'을 훌륭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때 들었던 곡이 바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CCM을 전혀 알지도 못했지만 처음 들었던 곡인데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노래처럼 귀에 쏙 들어오며 가사 또한 나와 승혁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며 위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래의 아름다움에 점차 빠지면서 기껏 어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끝날 것 같았던 공연도 초롱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선생님의 수화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들의 진지함이 공연을 보는 학부모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두 손으로 초를 꼭 쥔 채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천사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 같았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어린이집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기천사들의 아름다운 손짓과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작은 천국이 되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승혁이가 지금 내 눈 앞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 한 켠이 흐뭇해지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이집 수업을 마치고 다시 그 날 저녁 어린이집에서 진행된 공연이라 동생 승혜까지 데리고 오느라 미처 카메라도 들고 오지 못해 오래도록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해 놓으려고 열심히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승혁이와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내 눈물에 가려졌다. 자신의 자녀가 앞에 나와서 의젓하게 노래와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탄성과 웃음을 자아내며 여기저기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는 어린이집 교실 속에서 난 내 눈에 흐르는 기쁨의 눈물을 조용히 삼키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두 노래를 떠올리며 문득 가족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노래처럼 넌 나에게 난 너에게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내가 너이고 네가 곧 나인 가족은 내 자신과도 같은, 나를 닮은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매일 아침 승혁이를 어린이집에 바래다 주고 언어치료실을 가고 놀이터에서 함께 놀며 하루에도 수없이 승혁이의 마음을 읽어내느라 매순간 신경전을 벌이며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며 때로는 승혁이로 인해 마음아픈 순간에도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으로 기억될, 지금의 소중한 시간들을 사랑하고 있기에.

* 노래감상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http://www.music100.net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http://www.ccmlove.com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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