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말없이 아내노릇하느라 지친 주부들이 자신을 위해서도 속옷이 필요하면 얼른 옆에서 속옷을 내어주고 배가 고프면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아내'와도 같은 사람이 한 번 있어봤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이 글을 주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면서 영화제목의 의미에 동감하며 미소지은 적이 있었다.

요즘 나의 처지가 딱 그러하다.

얼핏 일과 가사,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취업주부보다는 덜 바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하지 않는 그 시간까지 가사일과 육아에 다 쏟아붓게 되니 좀처럼 나만의 시간이 나질 않는다. 아직은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혼자 하더라도 오히려 손이 많이 가게 만드는 두 녀석들 때문에 잠시도 음악을 감상한다던가 책을 본다던가 하는 나만의 평온한 시간을 잃어버린지 오래이다.

초등학교 취학전 꼬마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 어려움이기에 이 정도면 자식이 있어 주는 즐거움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승혁이가 이제 2년 가까운 언어치료의 효과인지 두음절 중심의 발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곧 학습치료를 앞둔 시점에서 앞으로 가정학습지도는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또 진학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할 때가 많다.

현재로서는 언어치료를 담당하는 선생님과 치료실에서 알게 된 부모님들과의 대화, 장애관련 사이트 검색이 전부이다. 물론 장애아의 교육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장애아 부모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아 부모 혼자 '알아서' 장애아 판별 검사시기를 택하고 직접 장애아 판별 검사를 받을 만한 의료기관을 찾아보아야 하고 4,5가지의 복잡하고 긴 장애관련 검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장애아 부모의 심신은 지쳐 버린다. 그런데 설령 장애아라는 결과를 받거나 아니면 장애아의 징후를 보인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더욱 험난한 여정이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장애아를 받아 줄 만한 보육시설을 찾아다니고 재활치료기관을 알아보아야 한다. 재활치료를 받기 위한 경제적 부담까지 부모의 가슴을 짓누른다. 엄마 혼자서 병원, 동사무소, 보육기관, 재활기관을 찾아다니는 '일임형'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그 과정 동안의 마음고생과 부담이 너무나 크다.

얼마전 관할 교육청에 홈페이지 게시판에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와 입학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바로 다음날 교육청 한 직원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조금 격앙된 듯한 직원의 목소리와 함께 날아온 대답은 '왜 함부로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냐"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이라면 전화를 해서 담당자에게 직접 문의를 해야 하는데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행정처리절차가 매우 복잡해서 곤란하다는 따끔한 충고까지.

글을 올리라고 만든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말라는 것도 의아한데 마치 민원인을 행동을 나무라는 듯한 직원의 말투가 불쾌했지만 그래도 대강의 장애아의 초등학교 입학유예절차를 알려주기에 그냥 꾹 참기로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후 한동안 기분이 씁쓸했다. 장애아 보육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힘겹고 장애아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앞서서 명쾌한 제시나 안내는 못할망정 오히려 민원인을 주눅들게 하는 교육계의 고질적인 행정자세만 다시한번 확인한 것 같았다.

결국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꿈은 무엇인가.

국가로부터 장애인으로서의 혜택을 받는 것이 결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앞으로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으며 장애를 극복해 가면서 비장애인처럼 완전한 자립은 아니더라도 장애가 있는 상황에서도 직업인으로서 자립을 하여 떳떳히 나라에 세금을 내는 당당한 사회인으로 키우는 것이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진정한 꿈일 것이다. 따라서 장애아가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결국 국가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장애아가 직업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최대한 제도적, 경제적 뒷받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온 가족이 각자의 일터와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할 수 있도록 일년 365일 수고를 아까지 않는 헌신적인 아내처럼 말이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아내'같은 도우미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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