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 못해 공개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에 동국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덕분에
매스컴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것은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됐었는데
사회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초대석에는 동국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방귀희 씨가 나와있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어요
두 다리를 못쓰고
두 팔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멘트에 이어 사회자는 원고에도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머리는 어떠십니까?-
난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을 수석 졸업했기 때문에 초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대학이 지능이 낮은 사람이 수석 졸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침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그 말은 그대로 방송되었고
방송을 듣고 장애인과 장애인 주변 사람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그 사건으로 kbs 제1라디오에 <내일은 푸른 하늘> 이란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이 신설되었던 것입니다
<내일은 푸른 하늘>은 1981년 4월 13일부터 지금까지 방송되면서
전국 재가 장애인들의 귀와 입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오후 5시 10분은 아예 장애인의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23년동안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해온 죄 밖에 없는 <내일은 푸른 하늘>을 폐지시키기로 했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kbs 제3라디오로 방송된다는 것인데
kbs 제3라디오는 AM 이고 전국 방송이 아니여서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장애인들에게까지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내일은 푸른 하늘>은 KBS 제3라디오가 FM 전국 방송이 될 때까지
지금 처럼 KBS 제1라디오에서 방송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일은 푸른 하늘> 때문에 방송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정적인 원고료를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푸른 하늘> 때문에 역량있는 작가로 성장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두시간 짜리 프로그램이 들어와도
난 단 20분 짜리 <내일은 푸른 하늘>을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난 돈을 벌기 위해 원고를 썼던 것은 아니니까요
난 <내일은 푸른 하늘>을 통해
내가 그리고 장애인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수석 졸업을 하고도 장애인 이라고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아직도 나는 바보 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합니다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늘 살피며
내가 아닌 상대방 의지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단지 장애인 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내가 바보가 아닌 것을 아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그 유일한 증인 마저 안계시니
난 정말 바보가 되버릴 것 같아
요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푸른 하늘>을 놓치는 건
바보짓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장애인이, 장애인계가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를 양보하면 모두를 빼앗기는 것이 됩니다
<내일은 푸른 하늘>을 살려주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7월 14일이 디데이 입니다
여러분들만 믿겠습니다
(혹시 바보 라는 단어에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바보 취급한 아나운서 일화로 얘기를 시작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