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제 인숙이 만났다
인숙이도 엄마랑 단 둘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린 만나면 늘 할 얘기가 많았지
근데 난 갑자기 할 말이 없는거야
예전에는
-어머 너네 엄마도 그러니 우리 엄마랑 똑같다-하며
맞짱굴 치곤 했었는데
인숙이가 엄마 얘기하는게 부럽더라구
아이들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와서 떠들어 댈 때
예를 들어서 소개팅을 받았다든지, 스키를 탔다든지, 멋진 남자 랑 부르스를 췄다든지….
그런 건 눈꼽만큼도 안 부러웠었는데
엄마 얘기는 너무 너무 부러워
엄마 생각날 때 뭐하는지 알어?
화장실 청소한다
엄마는 더러운 거 딱 질색이었잖아
특히 세면대 머리카락 있는 거,
변기에서 냄새나는 거 못견뎌했잖아
그래서 이마트 가서 화장실 청소용 솔을 샀지
나만 사용하는 화장실인데도 솔을 깊숙이 집어넣고 푹푹 쑤셔대는데
비위가 상하더라구
엄마는 내 변기를 50년 가깝게 치웠는데….
엄마 근데 인숙이 남자 생겼나봐
옛날에는 은희씨가 영계 어쩌구하면 인상을 쓰면서 머리를 흔들더니
이번엔 자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거야
이러다간 나만 낙동강 오리알 되겠어
유럽 연수 다녀왔다고 프랑스, 독일, 이태리 하면서
줄줄이 꿰더라
-음 좋겠다-만 연발해줬지
엄마가 말했지 부러워하지 말라구
그래서 부러움은 꿀꺽 삼켜버렸어
엄마, 난 요즘 억류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어
생방송도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구
방송 끝나고 나면 전화가 많이 온대
내가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긴 하나봐
피디도 깨달았을꺼야
장애인 방송이 왜 필요한지를 말야
난 엄마도 없고
영계도 없고
해외 여행도 못 가
하지만 괜찮아
아직도 날 원하는 곳이 있으니까
쿨하게 살아 볼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