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우다. 아니 약자는 모두 새우다

새우는 자기 살기에 바뻐 누구랑 싸울 틈이 없다

고래는 강자다. 고래는 사는 일에 어려움이 없으니까 한가하다

그래서 골프를 친다. 고래가 멋있게 스윙을 날려 골프 공이 냇가에 빠졌을 때 고래 측에서는 멋있다고 박수를 친다. 하지만 그 공 때문에 냇가 가족들은 화들짝 놀라 간이 콩알만해진다 어떤 땐 그 공에 맞아 크게 다치기도 하고 재수가 없으면 죽는다

무심히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얼마전 한 신문에 세무학과 교수가 이런 칼럼을 썼다. '정부가 복지에만 매달리면 국가 채무가 는다'고 하면서 사회복지는 기업이 해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하루하루 연명해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치명적인 공격이다. 물론 그 칼럼의 요지는 제대로 된 복지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사회복지가 국가의 빚이라는 개념으로 각인돼서 사회복지 대상자들은 국가의 기생충인양 인식하게 된다

많이 배운 고래들끼리 자기 이론이 옳다고 싸우는 바람에 이론보다는 실제에 목을 길게 늘어뜨려야 하는 새우들은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다

많이 배운 고래들이 정말 밉다

그런데 더 얄미운 건 이론도 없이 권력만 휘두르는 정치 고래들이다

이쯤에서 나에 대한 고백을 한다면 난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의 장애인이다. 다행스럽게도 직업이 있어서 우리나라 유일의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을 만들고 있다

내 직업은 방송작가이다. KBS에 장애인 대상 채널 사랑의 소리 방송이 있어 고맙게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KBS가 시끄럽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수신료 거부 사건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KBS도 한나라당도 고래이다

지금 고래들이 싸우고 있다. 솔직히 새우들은 그들이 왜 싸우는지 모른다

다만 파문이 파도가 되는 바람에 새우들이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있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살 걱정만 하고 있을 뿐,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저 빨리 싸움이 끝나 안정이 찾아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KBS가 수신료를 받지 못하게 돼서 광고로 운영을 하게 된다면 광고 경쟁력이 없는 장애인 프로그램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KBS가 공영방송이라는 방송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방송사에는 없는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을 TV와 라디오에 고정으로 편성해서 방송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에게는 재활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 일반인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KBS가 공영 방송으로서 해내고 있는 역할에 대한 판단 없이 괘씸죄로 치사하게 돈줄을 막겠다고 국민을 볼모로 법 개정을 시도하는 것은 근사하게 포장된 폭탄이다

그 폭탄이 터져도 KBS는 산다. KBS 역시 고래니까. 그 폭탄에 맞어 죽는 것은 우리 장애인들이다

하나만 생각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법은 악법이다

수신료는 우리나라 중산층들이 부담 없이 자기도 모르게 기부하고 있는 방송복지 성금이다. 그 누가 국민의 좋은 뜻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사회에서 새우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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