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큰 일 났어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노루가 아직도 못걸어

영구 장애가 될려나봐

어제 도서실에서 열심히 원고 쓰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온거야

"이모 큰 일 났어"

"왜?"

"노루가 다쳤어, 못걸어. 어떻게?"

"생방송만 마치고 바로 갈께"

어디가 얼만큼 다쳤는지

노루마저 떠나려고 하는 것인지

마음이 뒤숭숭했지

그까짓 개새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집에 온지 벌써 9년이나 됐고

또 엄마가 얼마나 귀여워해줬어

내가 엄마를 부르면 엄마한테 달려가서 엄마 치마 꼬리 물면

"언니가 불러? 알았어, 가자" 하면서 엄마가 내방으로 왔잖아

노루는 엄마와 나 사이의 통신원이였는데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이제 통신 역할을 하지 않더라구

집에 부지런히 오니까

아이들이(뉴질랜드에서 방학을 이용해 이모 도우미로 파견된 두 명의 조카) 노루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더라구

진통제 한대를 놔주었다고 하는데

뒷다리 하나를 땅에 집지 못해 절룩거릴 뿐 아프지는 안나봐

절룩거리며 걷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찔끔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

자기도 속이 상한지

얼른 그 자리에 앉아버리곤

슬픈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언니 마음 이제 알겠어요-하는 듯이

노루가 계속 못 걸으면 어떡하지

지금도 누워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장애는 사람한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모든 존재는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

요즘 애견 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을 정도로

개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늙고 병들어 버려지는 개들이 많데

개들의 노후도 정말 걱정이야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고통 이라는 부처님 말씀이

이제야 공감이 된다니까

노루에게 발생한 장애 때문에

난 동물의 장애까지 걱정하게 되었으니

짐이 하나 더 늘었어

동물 애호가들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동물의 장애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 문제도 우리 장애인계에서 맡아야겠지

그럼 아마 이렇게들 말할꺼야

"아니 사람 장애 문제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무슨 개 장애까지

들먹거려 한가한가 보네"

한가해서가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귀하니까

엄마가 떠난 후

깨달은 진리야

존재하는 것은 귀하다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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