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실은 한해를 보내면서 엄마한테 편지하려고 했는데

현아가 "이모 오늘도 바뻐" 하는 거야

바쁘다고 아이를 너무 외롭게 한 것 같아서

연기대상, 가요대상 요리 조리 돌려가면서 보고

DVD로 영화 <클래식>을 같이 봤다

엄마가 있었으면 "그만 자라"했을텐데...

새벽 4시 쯤 자리에 누웠지

아 이렇게 한해가 가는구나 싶었어

영화를 보면서

난 지난 1년의 필름을 돌리고 있었지

어쩜 엄마의 일이 오랜 영화 처럼 느껴지는 거야

나 참 나쁜 앤가봐

어떻게 엄마가 없는데도 한해를 잘 보낼 수 있었을까

엄마가 없는데도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엄마의 빈 자리가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내가 너무 싫어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

사랑한다고 너 없이는 못산다고 보고 싶다고 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살잖아

이제 이별이 두렵지 않어

새해에는 중환자실에 계신 구상 선생님도 가실꺼구

숙경(폐암으로 투병 중인 장애인 후배)이도 보내야 해

어쩜 우리집 노루도 갈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마지막 날 숙경이한테 갔었어

이제 앉지도 못하더라구

"언니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미안해"

"언니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언니 혼자 너무 잘 되는 것 같아서 내가 언니 미워했거든"

"잘 되면 같이 살려고 했는데.... 미안해"

"알어, 언니, 장애보다 더 힘든게 암이야. 장애는 아무 것도 아냐

언니, 건강하게 오래 살어"

내 설음에 겨워 얼마나 눈물을 쏟았던지...

엄마, 이제 안울꺼야

새해는 더욱 열심히 살꺼야

그래야 살아있을 이유가 생기니까

엄마, 이제 안심해

비가 많이 오네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나서

샤워하고

출근 준비하고

오전부터 방송하고

오후 녹음

저녁 생방송

허겁지겁 저녁 먹고

또 어떤 일이 생길까?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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