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앞 육교 설치 현장. <박종태>

지난 2월 21일 민자역사 지하도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어 휠체어장애인은 목숨걸고 무단횡단 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일이 있다. 며칠전 수원민자역사 앞을 지나가다 보니 수원역에서 세류역 방향

으로 육교가 세워졌고, 그 방향 수원민자역사 애경백화점 앞에는 육교가 한참 건설중이었다.

아니 휠체어장애인 등은 갈 길이 완전히 막혀버려 갈 곳이 없다. 지하도에도 장애인편의시설이 없어 세류동 방향 횡단보도 60미터 방향을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그곳마저 육교를 지으면 휠체어장애인은 어디로 가라는 말인지…. 복잡한 수원민자역 앞을 목숨걸고 무단횡단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3일 아침에 육교 공사중 현장을 가 보았다. 횡단보도 앞 육교는 땅을 파놓은 공간이 있어 혹시 엘리베이터 설치를 하는 기대감으로 제발 육교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원 권선구청 건설과를 거쳐 수원시청 건축과 계장과 통화를 하였다.

이곳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이 있는지 문의하니 설치계획이 있다고 하였다. 속에서 환호성을 울리고 수원시청에서 건설하는지 문의하니 수원민자역 애경백화점에서 건설하고 수원시에 기부 체납한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나는 이곳에 육교만 건설하고 엘리베이터 조금늦게 완성되고 횡단보도 철거하면 문제가 되니 육교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준공된후 육교를 철거하여야 장애인들 말썽이 없다고 전하였고, 15인승 엘리베이터 설치하여야 침대형 엘리베이터 이용하는 장애인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계장은 애경백화점 측과 이야기 하라고 하여 자세히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그곳에 전화하여 이런 내용을 전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바로 애경측 육교건설 하는 곳에 위치를 문의하고 곳바로 찾아가서 의논하였다. 애경백화점은 수원민자역 장애인편의시설로 몇차례 만난 적이 있는 직원이었다. 나는 회의시설에서 팀장에게 몇인승 엘리베이터 설치를 하는지 문의하니 12인승 엘리베이터라고 하여 절대로 안된다고 하고 침대형휠체어 장애인들은 15인승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니 왜 이제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는지 오히려 반문을 하여 장애인단체 등에 문의를 하였는지 따졌다.

나는 화가나서 '15인승 엘리베이터는 기본이다' '철도 전철 지하철 등 에도 15인승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있는 이유는 침대형 휠체어 때문이다' 이야기 하고 화가 나서 2002년 중앙일보에 난 기사를 보여주었다. 서울한 육교에 침대형 엘리베이터가 엘리베이터 문에 걸려 들어 가지 못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똑바로 보라고 하고 탁자유리 위에 놓여진신문 스크랩 위에서 화가나서 탁자유리를 탁치니 유리가 깨지고 말았다.

나는 변상을 하겠다고 하고 114 에 수원유리가게를 찾았더니 팀장은 앉아서 차분히 이야기 하자고 하여 설명을 들으니 서울신도림역에 설치된 수직형리프트를 보고 그 지역 구청 담당자에게 문의하여 설치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안산에도 육교에 두곳이나 설치가 돼 있다고 했다. 크기도 12인승 이지만 신도림역 하고 크기는 같다고 하여 그러면 안심이다 내가 침대형휠체어 가지고 직접 조사해보니 이용에는 불편이 없다고 하여 오해는 풀려고 업체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직접통화를 해보고 튼튼하고 문제 없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크기를 물어보니 가로로 1m70cm로 침대형휠체어는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하여 애경백화점과의 모든 문제는 풀렸다. 서로가 감정 오해를 씻고 유리 깨진것도 문제가 없고 나도 미안한 점을 전하고 그리고 육교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하고 난 후 횡단보도를 철거할 것을 다시 한번 제차 부탁을 했다. 애경백화점도 약속을 해주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나설 수 있었다. 꼼꼼이 살펴보면서 장애인권익지킴 책임을 다하고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을 살펴보고 따져보고 성사시키는 일에 보람을, 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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