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 전문.

지난 14일 오전 10시경 안산역 상가를 건설했던 명우건설 관리이사에게 연락이 왔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기로 했으니 합의서를 써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전에 볼일이 있으니 오후 3시에 안산역 상가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오전에 볼일을 보고 30분 늦겠다고 연락을 하고 3시 30분에 도착하여 만났다.

1층상가 사무실에서 만나서 명우건설에서 써온 합의서 검토하니 미진한 부분이 있어 다시 합의서에 삽입할 것을 요구하고 직원분이 다시 작성을 하는 동안 이사님이 나에게 왜 검은색 옷만 입는지 문의하여 천주교 신부님 수녀님 등은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나도 천주교 신자로 그런 마음으로 혼자살고 늘 죽음을 대비하고 산다고 이야기 하였더니 이사님은 나에게 건설업자들에게 꼭 저승사자 같다는 이야기를 해서 함께 웃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이사는 나에 대하여 조금은 자세히 알고 있었다. 전에 장애인 인터넷신문 에이블뉴스를 전해 드렸더니 에이블뉴스에 실린 나에 글을 꼼꼼히 읽었다고 하였다. 자신이 길러주고 키워준 천주교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안돼 있다고 대주교 신부님을 고발하는 것을 보고 장애인 편의시설 미비를 봐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나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다고 하였고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때 합의서를 직원분이 가지고 와서 내용을 검토하고 도장을 찍고 합의서 한부씩 갖기로 하고 하였다. 합의 내용은 '검은색 점자블럭 노란색으로 교체', '장애인화장실 설치 주출입구 말구 다른 곳도 경사로 설치', '시각장애인이 엘리베이터 이용이 가능하도록 숫자판에 점자 설치'를 요구하였고 건설업체 명우건설은 고소, 고발, 가처분 취소 법률행위중지 국가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고 신청하거나 신청중인 민원취소 각종 언론 및 안산역 쇼핑몰 관련한 글 게재 및 제보하지 않고 집회를 비롯하여 전단지 배포 등 상인 영업 방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법률 유무행위 떠나 장애인이 안산역사 쇼핑몰을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시설에 적극 하도록 검토 설치하기로 하였다. 이 합의서를 시청 담당자 과장 국장에게 보여주고 장애인 편의시설 원만히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전해했다. 기자실 기자들에게 그동안 도와준 것을 감사드리고 합의됐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정말 450만 승리였다. 나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불편한 일, 시키신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다. 그동안 많은 힘을 주신 에이블뉴스에 커다란 감사를 드린다. 장애인 편의시설 등 일을 하면서 칼럼을 쓸 수 있도록 하여주셨고 이 글들을 보고 안산역사상가처럼 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여주셔서 많은 장애인 일을 하는데 아주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일을 끝낸 후 정말 한 가지 마음 아픔은 잘 알고 존경하는 수녀님께 저를 20년 넘게 누나처럼 나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수녀님이 몸이 많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장애인 특수학교에 교장으로 계시고 그곳도 장애인 체육시설 수영장이 있는데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다고 수녀님을 많이 괴롭히고 괴로움을 참으면 2년전 MBC 9시 뉴스에 고발을 하였다. 그 후 미안하여 전화에 녹음만 하고 찾아뵙지 못하고 불편한 소식을 듣고 눈시울이 뜨겁고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건강만 하시면 덜 괴로울 텐데 수술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못하고 안산상가역 관리이사께서 천주교 고발 등 이야기하니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괴롭다.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자신에 즐거움도 버리지 못하면 남에게 결코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교훈을 잘 알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즐거움이 온전한 나의 즐거움이라는 것으로 알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지난 중증장애인 시절 나에게 건강함을 주신다면 장애인들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병대보다 더 강한 장애인 정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장애인은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이겨내는 힘은 해병대뿐만 아니라 세상 어떤 힘보다도 매우 강하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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