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장에 버젓이 주차된 외교관 차량. 차량 앞유리에는 장애인 마크가 부착돼 있지 않다. <박종태>

지난 12일날 중증장애인 어우러기 모임과 덕유산 체험여행을 가면서 고속도로 천안휴게소에서 뒤차하고 합류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곳이라도 장애인 주차장을 꼭 둘러보는 병적인 것이 있어서 둘러보았는데 모두 장애인 차량들이 주차를 하고 있었고 비장애인 차량은 없었다.

그래서 돌아와 버스 밖에서 서 있는데 아주 고급 차 한대가 장애인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멀리서 보니 외교관 차량이었고 여성분들이 머리에 쓴 것을 보니 아랍계쪽 여성분 같이 보였다.

말은 안 통하고 어떻게 할까 한참 궁리를 하다가 우선 사진을 먼저 찍고 쳐다 보길래 세워져있는 장애인 마크를 가리키며 손짓으로 나가줄 것을 요구하니 지팡이를 보이면서 몸이 불편하다는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 쌩하니 가버렸다.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장애인주차장에 세워뒀을 때 '나 같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마크 표시가 세계 공통이어서 외국에서도 공통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신문 방송 및 외국에 다녀온 장애인분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장애인주차장에 비장애인주차를 하는 것에 대한 단속이 매우 심하다고 들었다. 또한 그쪽 사람들은 교육이 잘 되어 장애인주차장에 주차하는 일은 없다고 들었다. 장애인주차장에 영어, 일어, 아랍어 등 외국말로 된 '비장애인은 장애인 주차장에 불법주차 하지 말 것'을 써야 하는지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어로 문구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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