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리조트 및 덕유산 체험 관광 여행에서.

지난 12일부터 13일 1박 2일 동안 중증장애인 모임 어우러기 회장 이광범씨와 회원21명은 중증장애인 독립생활을 위한 무주리조트 및 덕유산 체험 관광 여행을 같이 다녀왔다.

서울역에서 오전 9시 반 모여서 출발을 하기로 했으나 장애인 횔체어 이용 리프트 장착 차량을 두 대 빌려서 전동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용을 하고, 관광버스 한대도 빌리기로 하였으나 갑자기 봉고차 운행을 해주시기로 하였던 기사님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펑크를 내 오전11시 반에 출발을 했다. 봉고차 한대는 광명시에 가서 장애인 한 분을 모시고 가기로 되여 있어 고속도로 천안 휴게소 만나기로 하여서 이럭저럭 하다보니 무주리조트 숙소에는 4시30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무주리조트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저녁에 캠프파이어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취소를 하고 국민호텔 세미나 실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며 놀고 숙소에서 여자방 1 남자방 2개 중에서 한방에서 새벽2시가 되도록 자원봉사자 하고 같이 놀았다. 피곤한 사람은 일찍 자고 중증장애인 들은 너무 신이 나서 피곤함도 잊은 채 이야기 꽂을 피우면서 놀았다.

그런데 걱정은, 내일 이번 행사 하이라이트인 관광 곤돌라 타고 1천5백22미터 향적봉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해 중증장애인 분들은 들떠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비가 세차게 마구 퍼붓고 있었다. 속으로 내일 3시간만이라도 비가 그치라고 기도를 하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일 장애인 분들 실망하는 모습은 없어야 하는데 하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9시에 직원들이 출근을 해야 곤돌라 운행을 하는지 문의를 할 수 있는데 텔레비전을 보아도 자꾸 시계와 전화기에 눈이 가는 것이었다. 3시간이 너무 길었다. 9시가 되어서 곤돌라 사무실에 전화하니 9시30분에 결정이 난다고 하고 하여서 밖을 보니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가슴을 졸이고 나서 30분 후 정확히 9시 30분에 전화하니 곤돌라 운행을 한다고 하여서 환호성 을 올리고 두 방을 다니면서 곤돌라 운행을 알리고 탈 준비를 하였다.

리조트에서 곤돌라 타는 곳까지 차로 10분 거리. 걸어가면 언덕도 있고 한참을 가야한다. 비도 오고 하여서 봉고 리프트로 먼저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먼저 모시고 나서 다시 와서 같이 버스도 출발하였다.

비는 다행히 내 마음 을 알고 장애인 들 소원을 아는지 비가 그치고 있었다. 전동 휠체어는 곤돌라를 타려면 힘이 들어서 여유있는 수동 휠체어로 갈아타고 올라갔다.

힘들게 곤돌라 직원들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수고하여 휠체어 장애인 한사람에 자원봉사자 한사람 을 같이 태웠다. 1500미터 정상 향적봉은 일부는 조금 평지여서 장애인들이 다니기 불편하지는 않았다.

도착하니 정상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추워서 레스토랑 안에서 장작불을 피워주셔서 몸을 녹이고 먼 산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안개가 끼여서 먼 곳의 산은 어디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곤돌라를 타고 이곳에 온것에 만족하고 다같이 기뻐하고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시고 바람은 불어도 이곳정상에 온 기념으로 플래카드를 들고 전부 함께 사진을 찍고 2시간 30분 정도 머물다 내려왔다.

무주는 작년 무주반딧불 축제에 왔다가 이곳 무주리조트를 둘러보고 곤돌라도 타고 정상은 평지고 곤돌라도 크고 하여 장애인들에게 이곳 사정을 설명하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장애인들이 올만한 곳이라는 것을 설명을 하여서 어루러기에서 먼저 답사 및 예약을 하고 이곳을 택하여 오게 되었다.

나는 중증장애인 분들에게 장애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무엇인지 물어보니 방콕이라고 하였다. 속된 말로 방에 콕 쳐박혀 있는 것이라고 하니 다들 웃었다. 그리고 산정상에서 비바람이 조금 불때 장애인분들과 자원봉사자 분들한테 해병대보다 강한 정신은 장애인 정신이라고 하였다. 중증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사는 모습은 해병대보다 강하다고 했더니 다들 웃었다. 장애를 극복하는 정신은 세상 어느 것에 견줄 수 없을 만큼 매우 강하다.

장애인들밖에 나와서 웃고 좋아하는 모습에 정말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찡하다. 이렇게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세상에 비장애인들 모든 사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세상에 모든 곳이 무장애·무장벽이 되어서 중증장애인 들이 가고싶어 하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중증장애인 이런 모임에만 잘 모일 것이 아니라 편의시설 설치 및 잘못된 시설물을 고치는데도 앞장을 서서 일을 하였으면 한다. 중증장애인들은 본인 당사자로써 본인들이 불편한 것은 스스로 고쳐 나가는데 앞장서면 더욱 세상에 호소력이 있다고 본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 편의시설을 설치하여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비장애인도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받을수가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안국동 육교를 철거하여서 횡단보도 설치하였을 때 그곳에서 장사하는 분과 여러 사람이 장애인들의 노력으로 육교가 철거가 되고 횡단보도 설치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장애인들 덕을 보았다고 하였다.

비록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중증장애인이 자신을 학대하고 포기할 때가 가장 무서운 특급장애이다. 그러나 비록 몸은 중증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살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방에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글을 써서 많은 비장애인들이 읽고 실의에 빠진 분들이 용기를 가지고 재기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중증장애인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가지고 살며 중증장애인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세척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이 열심히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은 등대 및 세상에 빛을 밝히는 촛불과 같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목적도 없이 그냥 태어나신 분은 없다. 자신에 훌륭한 역할이 있다. 중증장애인들도 본인들에게 맡긴 일을 찾아서 노력하면서 살아갈 때 비록 몸은 고달퍼도 더욱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덕유산 체험에 많은 도움을 주신 무주리조트에 감사 드리고 향적봉 레스토랑 사장님께 감사 드리면서 후원해주신 뇌성마비복지회와 그밖에 후원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해병대 정신보다 더욱 강한 장애를 극복하는 정신으로 살아갑시다! 화이팅!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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