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돌아오질 않을 길을 가신 날을 헤아리는 일조차 빛 바랜 사진 속 시간으로 남는 세월은 흘러갑니다.

그러나 5월이 되면 제비꽃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고 당신은 그리움의 자리, 그 자리에 늘 안타까운 모습으로 서서 손짓합니다.

고지식하고 꼬장꼬장한 성품을 가진 아버지가 "이럴 땐 니 어미가 있어야 하는데" 하시면서 쓸쓸한 너털웃음을 웃으실 때 반백이 다된 아버지의 주름이 깊어보이고 당신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입니다.

엊그제 당신을 찾아갔을 적에 이제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하셨죠.

어느 사인가 당신의 무덤 가에 핀 할미꽃이랑, 제비꽃이랑, 하얀 무명초 피고, 시시 때때로 노래를 불러주는 산새들이랑 함께 산다고, 이제 너도 나이가 들만큼 들었으니 지나간 세월은 잊으며 살라고 하시는 것 같아 무척 허전하였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초등학교 입학하여 얼마 되지 않았던 날, 학교에 가자면 30분도 넘게 걸어야 할 산길에 걱정되어 학교가는 나의 뒤를 몰래 밟으며 따라오셨던 당신의 사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부리에 넘어지면서도 휘청거리는 다리로 잘 가더라"고 말씀하시는 눈가에 고이던 눈물이 떠올랐습니다.

"성치 않은 딸에게 평생 손과 발은 되어 줄 수 없으나, 5남매의 맏이로 제몫을 다하고, 장애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 세상을 향해서는 당당한 자존심을 지니고 살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합장하며 간절히 기도하던 당신의 마음이 있었기에 세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이별하던 날에 철없이 어리던 동생들도 이제 잘 커서 어머니가 되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당신 없는 자리 메우느라 가슴이 타고 주름살 깊어진 아버지는 쓸쓸한 담배연기 내뿜으며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어머니, 오늘 하루가 저물어 멀어지듯이 멀리 있는 당신으로 그리워합니다.

여름이 오면 봄이 잊혀지고, 가을이 오면 여름이 잊혀지고, 겨울이 오면 가을이 잊혀지고. 또 봄이 오고,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 꽃 한 다발 들고 가면 반가워 해주는 어머니, 거리마다 넘치는 카네이션의 물결을 보면서 또 다시 당신을 그리워 합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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