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구나.

일 주일에 한 두 번은 만나면서도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것 같아.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너의 모습을 그려보았어. 곧 여름방학이니 여러 가지 분주하게 움직일 모습도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아이들과 애정 담긴 시선을 주고받으며 도란도란 옛날 이야기 들려주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좋은 지 모른다고 하였지.

그리고 행여 선생님의 말을 놓칠세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햇살보다 눈부시다고 했던 말도 기억나는구나.

오늘도 그런 너를 생각하다가 눈가에 이슬 촉촉이 맺혀오는 것은 나를 대신해 맏이 노릇 하는 동생에 대한 못난 언니의 미안함과 고마움 같은 거란다.

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꿈을 접고만 것이 참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걸리고 항상 미안했었단다.

서른 한살이 된 네게 방송통신대 원서를 내밀었을 때, 망설이던 네가 무사히 대학을 마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란다.

네가 교사로서 첫 월급을 받던 날, 나에게 해준 선물 기억하니?

포기하고 있던 공부를 시작하게 용기를 주고, 같은 대학을 함께 다면서도 시험이 가까워오면, 시험 공부하라고 퇴근 후에 불편한 몸으로 집안살림을 대신 해주어서 4년 만에 졸업하게 해준 언니가 고맙고, 그 덕에 언니의 졸업이 늦어진 것 같아 늘 미안했다는 메모와 함께 선물해준 목걸이, 그것은 언니를 생각하는 소중한 너의 마음이었어. 그리고 여건이 어렵긴 했지만 우리 오남매가 우애깊게 커왔음을 말해 주는 것같아 더욱 고마웠어.

올 학기초에 너의 반에 장애아 한 명이 들어와서 그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 지 많은 고민을 하면서 자료도 찾고,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던 네가 생각나는구나.

오늘은 일본의 소설가면서 영문학자였던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너에게도 들려주려고 해, 나쓰메 소세키가 대학교수로 있을 때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화란다.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 중에 자신의 한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른 채 앉아 있는 학생이 있었지.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완고했던 나쓰메 소세키 교수는 불손해 보이는 그 학생을 향해

"학생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게나"

지시를 했지만 그 학생은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 않았어.

화가 난 나쓰메 소세키 교수는 강단을 내려와 학생 곁으로 가서

"그런 자세로 강의를 들든 건 무례한 일이네, 어서 그 손을 빼도록 하게"

라고 다시 다그쳤지.

그러자 그 학생은 한참을 머뭇대다가

"교수님, 사실은 저는 팔이 한쪽 없습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

라고 말을 어렵게 했어.

나쓰메 소세키 교수는 깜짝 놀랐지. 제자의 말못할 사정을 안 나쓰메 소세키 교수는 다그쳤던 자신이 미안하고 부끄러웠어. 그 교수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제자의 등을 토닥거렸어. 그리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 말을 했다고 해.

"여보게, 교수인 나도 지금 없는 지식을 억지로 짜내서 수업을 하고 있다네, 그러니 자네도 없는 팔 한쪽을 드러내 주지 않겠나"

이 일화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시련이 없을 수 없다는 것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자세에 대해서도 교훈을 주는 이야기인 것 같아.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귀 기울여 듣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정을 살펴서 다독여 주는 것이 교사의 바른 자세이겠지.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변함 없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늘 계획하며 실천하는 현명한 교사가 되길 기도할게.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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