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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어느 흐린 날의 단상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3-09-18 08:50:07
많은 피해를 주었던 태풍 매미도 지나가고, 장마철같이 내리던 가을비도 주춤한 9월 , 깊어진 가을입니다. 주말쯤에 비가 온다는 소식은 있지만 바람이 서늘하고, 구름사이 약간약간 비치는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나절, 놀이터로 놀러나간 조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조카가 유치원의 또래 친구와 함께 놀이터 나무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난감 정리 잘했다고 엄마가 사준 자동차 자랑, 서로 자기 선생님이 더 예쁘다는 주장,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동화이야기 등등 때묻지 않은 다섯 살의 동심으로 나누는 대화는 참 진지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예쁘던지 두 아이의 대화를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두 아이를 지켜보다가 저 아이들처럼 순수한 대화를 나눌 친구가 얼마나 있는가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애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였나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바쁜 생활에 휩쓸려 살아갈 뿐, 주위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다기보다 건성으로 지나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생각하는 것조차 건성으로 하는 일이 많으니 빈 껍데기가 움직이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합니다.

한곳에 머물러 잊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 없고 종이배가 물결에 떠내려가듯이 그냥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고, 만족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의 여기 저기를 끊임없이 기웃거립니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서로가 겉돌기만 하는 생활, 서로의 겉모습이 전부인양 숨겨진 서로의 진면목이나 진심을 살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쉽게 실망하고 쉽게 이별을 하는 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속에서 살면서도 늘 가슴은 비어 있어 허전하고, 항상 나 홀로 있는 것처럼 외로운 게 요즘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내 자신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진실한 자기 본모습이 가지고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기질 수 있으면 세상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한가지 일을 생각하기 위해서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고, 상대를 바르게 보고자 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잘 보려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는 간단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마음의 문도 열려 앞에 있는 사람의 참모습이 보이고 섬처럼 떠도는 군중 속의 외로움을 조금씩 덜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의 말을 건네면 내 자신도 그 순간의 소중한 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최명숙 최명숙블로그 (cmsook1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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