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씨라기보다는 뜨거운 여름 날씨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어오는 강바람은 마치 겨울 바람과도 같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황사현상으로인해 하늘은 뿌옇게 흐려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 꼬마들이

웃으면서 층계를 올라가고 있었다.

"야 야 저 아저씨 우리시대에 나왔던 사람이야."

"맞다 맞다"

나를 보더니 "안녕하세요.아저씨 텔레비젼에서 봤어요."

하는 것이었다.

"음...그래."

한 아이의 품에는 조그마한 상자가 있었고 그 속에는

삐악 삐악하는 병아리 한 마리가 슬피 울고 있었다.

"병아리 한 마리 얼마니"

"네.500원이요.

하루 살아요."

병든 병아리였다.

"그래.1000원짜리는 이틀 살겠네."

"그렇죠.5일 정도 사는 애들도 있어요."

"단 하루라도 잘 키워라."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이렇게 헤어졌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는데

노오란 그 병아리가 네 뇌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나의 유년 시절,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 였던걸로 기억한다.

100원을 주고 병아리 한 마리를 샀었다.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난 숙제도 안하고 가방을 집어 던진채

병아리 앞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그 작은 생명이 꿈틀대고 삐악 삐악하는 소리에

넋이 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들시들해 가더니

그 다음 날 죽고 말았다.

난 그 때 처음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집 앞마당에 묻어주고 묵념을 하였다.

나약한 미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루살이로 살다간 병아리가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졌다.

왜 병아리는 하루만 살까?

난 이 세상 모든 병아리들이 단 하루만 사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닭은 병아리를 낳고

달걀은 후라이를 낳은 줄만 알았다.

20년 전의 그 죽은 병아리는 천국에 가서 토실 토실한

토종닭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양념치킨이나 후라이드로 배달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광욱씨는 현재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비상근간사로 일하고 있다. 1살때 연탄구덩이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으려다 구덩이에 머리부터 빠지는 바람에 화상장애인이 됐다. 그는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 등으로 취업을 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얼굴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정부과천청사앞에서 화상장애인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1인시위에 나서는 등 화상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해 세상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5월부터 테스란 이름으로 취업전문 사이트 인크루트에 취업실패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그 사이트에 올린 180여건의 경험담은 최근 '잃어버린 내 얼굴'이란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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