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25일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오늘 뭉쳤다.

건강세상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제 1회 환우모임 간담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40개 다양한 질병.희귀병 질환자 모임중에 7개단체만이 참석을 했다.

백혈병 환우회,한국 원폭2세 환우회,화상환자 모임,간사랑 동우회,GIST(위장관기저종양)환우회,암환자 가족을 사랑하는 시민연대...등등 일부 단체만이 참석을 했다.

암사연,에이즈환우모임,유방암환우모임,태아알콜증후군환우회,터너증후군환우회,한국신경섬유종환우회에서는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우리는 왜 모여야만 했는가?

답은 간단했다.소수의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조직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환우회 성격은 거의 대부분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었고

환자들을 볼모로 했던 것이다.

의료사고가 일어나더라도 환자들은 넋놓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갖은자의 백그라운드와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권력으로 압력을 행사하기에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매번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각기 나름대로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위암에 걸려 투병중인 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의 할머니와 여동생이

위암에 걸려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그리고 봄에 고모님이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사촌누님은 2년째 뇌종양으로 투병생활을 하시고...지금 본인과 부친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모임이나 캠프를 떠나고 돌아온 후면 부음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본인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때문에 늘 괴로워하고 있다가 투쟁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백혈병 환우회에서도 나름대로 어려움은 많았다.

약 3000명 정도 추정하지만 실태조사가 우리 화상환자들 처럼 쉽지 않다고 한다.

글리벡 약가가 한 캅셀 당 23,045원(생산원가의 30배)으로 결정됨에 따라, 보험을 적용 받지 못하는 백혈병 초기 환자들은 한 달에 2백76만5천원(하 루 4캅셀 복용기준)씩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 백혈병 초기 환자는 전체 환 자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또, 보험이 적용되는 중기, 말기 환자의 경 우엔 각각 74만6천원에서 124만4천원(하루 6-10캅셀 복용기준)씩을 부담해 야 한다. 나라별 경제수준을 고려할 때, 이 가격은 영국 환자들이 부담하는 가격의 9배에 해당한다.

백혈병 말기 환자인 최종섭씨는 "하루에 10알을 복용해야 하는데, 하루 8 알까지만 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한 달에 무려 240여 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며 "이제는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폭 2세 환우회의 김형율씨...

1945년 히로시마에서 어머니가 피폭 당하였고, 그는 원폭 2세가 되어버렸다.단순 2세가 아니라 원폭으로 인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10 차례의 폐렴수술을 받아왔고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재생불량성빈혈, 중이염을 함께 앓고 있다.부산에서 모임에 참석하기위해

서울까지 오신 그 분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전국에 원폭 2세가 8천명 가까이되는데 지금 회원이 단 2명이다.

5형제중 막내인데 나머지 형제는 일단 건강하다고 한다.다음 세대에 유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가 세상밖으로 나오는데 가족의 핍박이 가장 컸다고 한다.

가족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모두들 쉬쉬하고 은폐하려 했던 것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다.하지만 화상도 마찬가지겠지만

숨긴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청년이었다.

키도 작고 몸무게가 35키로...너무 왜소해 보였지만 참으로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국주의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던 미국은 승전국이 패전국에 피해 보상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은 이제까지 원폭 희생자들을 위해 약 25조원을 소비했다.

한국 정부는 어떤가...자국민의 희생에 대해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나?

희생당한 사람들만 불쌍할 뿐이다.

피해자는 결국 우리들인 셈이다.

우리 문제는 결국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민족 문제, 강자가 약자를 삼키는 힘의 논리,건강 문제,인권 문제 등등...

그는 한 몸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죽어서는 안된다.

죽으면 과거속으로 역사속으로 묻히고 말것이다.

그가 살아만 준다해도 이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는 전사의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그의 뜨거운 가슴앞에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들의 구구절절 사연을 듣고 보니 화상이 그리 큰 아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왜 모여야만 하는가가 더욱 분명해졌다.

내가 겪은 화상의 고통을 중심으로 이야길 풀어나갔고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한 화상환자모임의 특수성에 분개했다.

우리가 세상 밖으로 뛰쳐 나올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 생업을 포기하고 여기 일에 전념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간담회나 교육,세미나가 있을 때 참석해서 함께 정보를 공유할 필요는 있다.

모양은 서로 다르나 결과적으로 같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자기안의 아픔만이 전부인것 처럼 난 살아왔다.

내 아픔이 가장 크고 어느 누구도 이해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편협한 세계의 틀을 깨고 더 넓은 곳으로의 이행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는 할 말이 참 많다.

입을 다물고서 침묵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목놓아 부르짖어야만 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왜 이렇게 살아왔어야 했는지를...

김광욱씨는 현재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비상근간사로 일하고 있다. 1살때 연탄구덩이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으려다 구덩이에 머리부터 빠지는 바람에 화상장애인이 됐다. 그는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 등으로 취업을 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얼굴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정부과천청사앞에서 화상장애인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1인시위에 나서는 등 화상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해 세상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5월부터 테스란 이름으로 취업전문 사이트 인크루트에 취업실패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그 사이트에 올린 180여건의 경험담은 최근 '잃어버린 내 얼굴'이란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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