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기구를 이용하여 컴퓨터를 사용하는 장애아동

『4000여종에 이르는 모든 민원을 인터넷으로 안내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전자정부(www.egov.go.kr)가 공식 출범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31일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해온 민원서비스 혁신사업인 ‘G4C’의 서비스 준비를 모두 마치고 대한민국 전자정부 단일창구인 ‘www.egov.go.kr’를 통해 민원서비스를 1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전자정부 개통으로 앞으로 민원인들은 행정기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4000여종의 민원에 대한 구비서류와 처리기관, 수수료, 근거 법령 등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으며 이중 393종의 민원은 인터넷을 통해 신청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중략)

행자부 관계자는 “이번 서비스 개통으로 사업자 등록증명만 해도 행정기관에 민원구비서류로 제출하던 연간 약 13만건을 발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연간 1조8000억원의 예산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상은 2002년 10월 31일,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공식 출범을 보도한 어느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지난 1월 22일 서울 여의도 보이스카웃빌딩에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최한 장애인복지5개년계획수립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매우 중요하고도 뜻 깊은 계획에 관한 것이기에 이 땅의 모든 장애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공청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계획안의 세부추진계획에 보면 ‘자립생활지원’에 대한 부분이 들어 있어서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제도적 개선 추진이라고 하는 부분의 세부 내용들은 ‘자립생활훈련프로그램의 실시’, ‘전동휠체어 등의 대여 또는 지급’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계획안을 보면서 자립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또 하나의 복지서비스로 받아들이려는 정책입안자들의 짧은 생각에 한숨만이 나올 뿐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5개년계획에 부족하나마 자립생활이란 용어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겠냐는 사람들도 있다. 맞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이해된 채 반영되기 시작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안하느니만도 못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장애인복지5개년계획수립관련 공청회를 마련한 사람들에게 국가의 5년지 대사를 정하는 공청회에서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었는가 묻고 싶다. 제대로 홍보가 잘 안되어서 실제로 그러한 공청회가 열리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리 홍보가 잘되었다고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공청회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중증장애인들은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러한 공청회를 거쳐 나온 정책들은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은 배제된 채, 비장애인재활전문가들 끼리 만든 시혜적 차원의 복지정책들 뿐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청회는, 의견수렴 뿐만 아니라 결정과정에도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자립생활의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방식으로, 과연 이번 계획안에서 자립생활의 이념을 일부만이라도 도입할 생각이 진정 있기나 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제 우리는 전자정부 시대에 살게 되었다. 대통령의 당선 여부도 인터넷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임을 이미 실감했다. 정보화시대에 있어서 장애인들은 또다시 소외되고 차별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나마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공청회보다는 온라인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이 훨씬 덜 차별적인 현실적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단, 이러한 의견수렴방법에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에 대한 홍보가 우선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정책에 자립생활의 이념을 도입하려고 한다면, 가장 우선시 되어야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중증장애인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누워서, 마우스스틱을 입에 물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인터넷을 위안삼아 살아가고 있을, 중증장애인의 소중하고도 진실된 의견을 담아서 정책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자립생활의 이념을 실천하고자하는 정책입안자의 의도를 피부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이광원의 소비자로서의 장애인’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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