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트 리빙 운동의 창시자 '에드 로버츠'.

“그룹홈생활이 자립생활입니까?”

누군가가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질문한 ‘자립생활’의 자립이 일반명사로서의 자립이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의 자립생활이라고 한다면, 그건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룹홈의 생활을 ‘인디펜던트 리빙’에서 얘기하는 자립생활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계획에 보면 분야별 계획 중, ‘장애인복지향상’ 분야에 있어서 상위목표가 '독립된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당당한 자립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고, 하위목표로 ‘장애인 역량강화를 통한 자주적 독립생활 촉진’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자립적 삶’, ‘자주적 독립생활’ 등의 개념은 장애인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고 있는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의 이념이 일부 도입된 것으로 보여, 자립생활운동가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세부계획을 들여다보면, 온통 실망스러운 것들뿐인데, 이와 관련 된 부분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복지 시설서비스 확충

ㅇ 시설 생활 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 및 재활지원 강화

- 10여개 공동생활가정을 연계한 장애인공동생활 지원센터 설치를 통해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모델 시범운영 추진

□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제도적 개선 추진

ㅇ 국내실정에 적합한 자립생활 표준모델 개발 및 보급 지원

-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자립생활 표준모델 연구개발 및 자립생활 훈련

- 공동생활가정(Group Home) 운영시 자립생활 체험훈련 프로그램 실시

※ ‘03년부터 7개 시, 도 「정신지체인지원센터」설치, 운영

ㅇ 자립생활 여건 조성

- 지역사회재활시설과 연계하여 자립생활 활동보조인력 파견 지원

- 고가이면서 사용이 편리한 전동 휠체어 등 재활보조기구 대여 또는 지급 추진

특히, 이 내용 중, ‘10여개 공동생활가정을 연계한 장애인공동생활 지원센터 설치’, ‘공동생활가정(Group Home) 운영시 자립생활 체험훈련 프로그램 실시’, ‘7개 시, 도 「정신지체인지원센터」설치, 운영’ 등은 그룹홈의 생활을 ‘인디펜던트 리빙’의 자립생활로 혼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필요한 계획임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것이 목표에서 제시된 ‘인디펜던트 리빙’의 자립생활을 실천하는 세부계획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 리빙’의 자립생활에서는, 물론 ‘자립생활 체험훈련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신지체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굳이 그룹홈이라는 재활모델의 체계 아래에서 시행할 필요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그룹홈의 모델은 정신지체인 부모로부터의 (일반적 의미의)자립이란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부모와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이, ‘인디펜던트 리빙’에서 말하는 자립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그룹홈의 모델이 ‘인디펜던트 리빙’의 자립생활의 이념과 상반되는 가장 큰 부분은 ‘소비자 통제(consumer control)'의 원칙이다. ‘인디펜던트 리빙’의 이념으로는 소비자인 장애인이 통제하는 것이 원칙인 반면에, 그룹홈에서는 생활지도교사가 통제하며, 장애인을 훈련시키는 방식의 전형적인 재활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룹홈에서 ‘인디펜던트 리빙’의 이념들을 도입하여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룹홈 자체가 ‘인디펜던트 리빙’에서 얘기하는 자립생활의 모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처럼 ‘인디펜던트 리빙’의 개념에 대한 혼란들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충분히 펼쳐지고, 그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어져야 하며, 그러한 과정도 없이 설익은 정책들이 시행되는 일은 앞으로는 없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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