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사과하는 이상배의원(사진출처 : 동아닷컴)

최근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노대통령의 방일외교를 ‘등신외교’라고 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결국 이의원이 국회 의원총회에서 사과함으로써 점차 마무리되어 가는 듯 하다.

이상배의원이 얘기했던 등신(等神)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무, 돌, 흙, 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본래의 뜻보다는 ‘병신’을 다르게 부르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병신’이란 단어는 장애인(이 경우에는 정신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상배의원은 장애인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번에 ‘등신’이라고 한 것이, ‘병신’과 아무 관계없이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게, ‘인형과 같은 것’을 두고 한 발언이라고 한다면, 정말 할말이 없다. 하지만 발언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말을 듣고 ‘병신’의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이 전혀 없으리란 장담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하하는 표현을 쓰지 않고 정상적인 단어를 사용했더라면, 즉 노대통령의 방일외교는 ‘장애인외교’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미국인이 ‘부시대통령은 꼭 한국인 같아!’라고 얘기했다고 하자.

이 말은 부시에 대한 모독인가? 아니면 칭찬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발언자와 그 청중들이 ‘한국인’이란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기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처럼 한국인은 ‘개나 잡아먹는 야만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부지런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모독이 되느냐, 칭찬이 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냐, 아니냐로 논란을 벌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히 비하표현을 썼다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비유한 것 자체가 모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노무현, 혹시 장애인 아니야?'라고 말했다고 했을 떄,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칭찬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한 비유를 하는 사람이나, 그 비유를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어리석고 모자라는 사람’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빙상선수 오노의 사건 때, 한 개그맨이 오노는 ‘얼음의 신’, 즉 빙신(氷神)이라고 하며 웃음을 강요했던 적이 있었다. 또 요즈음 일부 중고등학생들은 친구들을 비하하여 부를 때, ‘애자(장애자를 줄인 말)’라고 부르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직도 TV를 켜면, 뉴스시간에 ‘절름발이식 행정’이란 표현을 쓰는 기자나 앵커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지난 5월 말, 로이터통신은 미국에서 교과서에 ‘blind(장님)'란 단어를 무례한 표현이라는 이유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으며, 이렇게 사용 금지된 단어가 500개에 이른다는 보도를 했다. 이같은 미국의 새 교과서 편찬 기준으로는, 헤밍웨이의 명작 ’The Old Man and the Sea(노인과 바다)'란 제목도, ‘Old'가 노령차별, ’Man'이 성차별에 해당되며, ‘Sea'가 내륙지방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에 해당되므로, ’The Older Person and Water'로 바꿔야할 것이란 기사였다. 쌍용자동차에서는 아직도 ‘chairman(의장)’이란 이름의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실제로 각종 국제회의에서는 이미 의장을 ‘chairperson'으로 부르고 있다.

‘야! 저런~, 장애인 같은 사람이 있나?’하는 말이 모독으로 들리지 않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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