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의 포스터

장애가 이유가 되어 자기의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끊임이 없다.

지난 7월 8일, 경북 고령군의 조아무개씨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서, 정신지체 장애인 아들(며느리의 시아주버니)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함께 죽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곧 시댁으로 달려간 며느리는 안방과 헛간 서까래에 목을 매 숨진 두 명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02년 7월 1일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장애인 아들을 목졸라 숨지게 한, 같은 장애인 아버지가 구속되었다. 이들은 유전적 질환인 윌슨병을 가진 장애 가족으로 20평짜리 허름한 한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최저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9월 30일, 서울 성북구에서는 터너증후군의 장애인 아들을 집 앞에서 스타킹으로 목졸라 죽인 엄마가 경찰에 자수했다.

이렇게 장애인인 자식을 살해하는 부모들의 변을 들어보면 ‘장애로 인한 자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살해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우리가 눈물어린 동정을 던지기 전에 꼭 생각해 봐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첫째, 장애로 인한 고통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장애인들은 이 사회에서 장애로 인한 수많은 고통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들과 똑같은 장애를 가졌지만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선진국의 장애인들을 생각해보면, 그 고통은 장애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으로서의 살인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다면 우리는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노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모두 목 졸라 죽여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을 장애인 개인에게서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장애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대책은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개혁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애인 자식에 대한 살인과 관련하여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살인자인 부모에 대한 동정과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잘못된 관점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면 흔히 ‘오죽했으면…’하는 동정의 여론이 뒤 따른다. 뿐만 아니라 언론 역시 그러한 동정심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은 앞서 예시한 작년 7월 1일의 살인사건 후에 종합일간지에 실린 관련기사의 제목들이다.

- 불치병 아들 살해 '눈물의 父情'/법원 영장기각 여부 관심(문화일보, 2002-07-03)

- 장애아들 목조른 안타까운 父情(동아일보, 2002-07-03)

- “죄인이지만…” 불치병아들 살해 아버지 동정여론 봇물(국민일보, 2002-07-04)

- 불치병 아들 살해한 눈물의 부정(국민일보, 2002-07-09)

보통의 시민들이 잘못된 관점을 가졌다고 해도 적어도 언론이라면, ‘장애로 인한 고통은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란 논평을 통해, 그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아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장애가 이유가 되는 살인의 추억들….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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