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1952년 일본 미야자키현의 고지마라는 무인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섬에는 한 무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과학자들이 이 원숭이들에게 흙에서 캐낸 고구마를 먹이로 제공했다.

모든 원숭이들이 손으로 흙을 털어 내고 약간은 지저분한 상태로 고구마를 먹고 있었는데, 어느 날 18개월 된 한 원숭이가 흐르는 물에 고구마를 씻으면 깨끗한 고구마를 먹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의 친구들이 이를 따라 하기 시작하며 급기야 ‘씻어 먹는’ 행위가 새로운 행동양식으로 확산됐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 숫자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자 이번에는 고지마섬 이외의 지역에서도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가사의하게도 고지마섬에서 멀리 떨어진 다카자키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사는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는데, 서로가 전혀 접촉할 수 없고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신호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정보가 흘러간 것이다.

미국의 과학자 라이올 워슨(Lyall Watson)은 그의 저서 ‘생명의 조류(Lifetide)'에서 이것을 ‘100 마리째 원숭이 현상’(the Hundredth Monkey Phenomen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임계숫자(Critical Number)에 달하면 그 행동은 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확산되어 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가리킨다. 이 학설은 1994년에 인정되었다.

많은 동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물론 조류·곤충류 등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임을 밝혀냈다.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에 대한 강연을 다닐 때마다 자주 듣는 코멘트들이 있다.

‘어느 천 년에 그런 날이 오겠냐구요!’

‘우리나라는 아직 시기상조야.’

자립생활의 충격이 일본열도를 들끓게 했던 무렵인, 1985년에 일본과 미국의 자립생활운동가들이 ‘오사카미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는 미국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자립생활센터가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지금 일본에는 자립생활센터가 110개나 생겨났다.

정말 우리나라의 모든 장애인들에게 자립생활패러다임이 보급되고, 자립생활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날이 오는 데에는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꼭 그 때가 되어야지만 사회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고지마 섬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된 후에도, 여전히 손으로 흙을 털어내고 고구마를 먹는 늙은 원숭이는 남아있었다.

자립생활이 보편화된 선진사회라고 할지라도, 위험을 감수할 권리를 포기한 채, 요양원에 안주하려는 장애인들 또한 있는 것이다.

사회는 구성원 100%가 깨달음으로써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일부 앞선 장애인들이 깨닫기 시작하여 그 수가 임계숫자에 다다르면, ‘100명 째 사람 현상’에 의해 시공을 초월한 공명현상(共鳴現象)이 작용하게 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깨달음으로 이어짐으로써 사회는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의 희망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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