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파이

영국의 장애인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Does he take sugar?”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의 교육, 고용, 사회문제, 레저 등과 관련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으로 장애인계의 폭 넓은 분야를 다룬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프로그램 제목이 왜 “Do you take sugar?”가 아닌 ‘“Does he take sugar?”인가 하는 점이다. 커피를 타 가지고 왔을 경우에 보통 “설탕을 넣으시나요?”라고 그 사람의 취향을 묻게 된다. 그러나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을 대동하여 방문한 경우, 장애인이 마실 커피를 장애인 본인에게 직접 묻지 않고, 함께 앉아 있는 활동보조인에게 “저사람 설탕을 넣나요?”라고 묻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이처럼 보통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평가절하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 의미에서 프로그램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영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도 흔히 일어나고 있음을, 장애인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많이 전해 듣고 있다.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을 대동하여 음식점에 갔을 때, 주문 받으러 온 종업원이 장애인의 메뉴를 본인에게 묻지 않고, 활동보조인에게 “이분은 뭘로 드릴까요?”라고 묻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들의 배경에는 ‘장애인은 음식주문(혹은 커피주문)을 할 수 없거나,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오해가 깔려 있는 것이다.

필자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으로서 길거리를 다닐 때 주위사람들의 과잉친절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보도를 휠체어로 지나갈 때, “밀어드릴까요?”하고 물어보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어드릴 게요”하며 일방적으로 휠체어를 밀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이 휠체어를 처음 다루는 분이라 운전 솜씨가 서툴다보니, 보도의 패인 곳에 앞바퀴가 파묻히거나, 경사진 쪽으로 휠체어가 쏠리는 등, 오히려 불편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오히려 혼자서 밀고 가는 것이 더 수월한데 말이다. 이 때, 그 분의 선의를 생각하여 “괜찮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해도, “아녜요”하며 꿋꿋이(?) 계속 미는 분들이 많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장애인은 스스로 휠체어를 밀 수 없거나, 잘 밀지 못할 것’이라는, 또 ‘내가 밀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오해가 깔려 있는 것이다.

2000년도에 한일장애인자립생활세미나를 개최하여, 일본에서 온 자립생활 리더들이 서울에서 발표할 기회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플로어에서 질문이 나왔는데, 장애인과 함께 온 비장애인이 옆에 있는 장애인의 질문이라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때, 일본에서 온 자립생활 리더(나까하라 에미꼬상)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옆에 계신 그 장애인이 대신 물어봐달라고 부탁한 겁니까?”하고 날카롭게 되물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새롭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장애인의 질문을 중단시키고, 그 옆에 있는 활동보조인이 대신 얘기하라고 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했던 적이 있었다.

휠체어 장애인이 참석하는 회의장에 가보면 너무나도 친절하게(?) 미리 휠체어 대수만큼 임의로 의자를 빼놓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이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미리 의자를 빼놓지 않는다. 휠체어 장애인 참석자가 회의장에 들어와서 본인이 직접 선택한 자리의 의자를 빼는 것이 바른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을 비장애인이나 전문가들의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보호나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가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또, 그것이 선의에서 출발한 경우도 많이 있어서, 그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도 많다. 이러한 경우, 그들의 편견과 오해를 스스로 깨닫게 하고, 그 선의를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게 교육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서포터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인식개선을 위한’ 마라톤 대회, 유명가수의 콘서트, 나들이 등과 같은 각종 이벤트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실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하는 방법이 가장 적절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생활 속에 배어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이 사라지고, 식당에 들어서면 장애인 본인에게 “뭘로 드릴까요?"라며 묻는, 어여쁜(?) 종업원들의 웃는 모습을, 어디가나 볼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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