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의 이미지

- 중증의 장애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여성이기 때문에, 흑인이기 때문에, 혹은 경상도사람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

본 칼럼에 ‘살인의 추억, 그 끝은 어디인가?’라는 글을 올린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장애인에 대한, 그것도 가족에 의한 살인사건이 세간의 화제로 재등장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10월 12일 밤 9시40분쯤 용산구 후암동 자신의 집에서 가정용 인공호흡기의 전원코드를 콘센트에서 뽑아 이에 의존해 살아가던 자신의 딸(20)을 숨지게 한 전모(49)씨에 대해 18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딸이 6년여 전 경추(목등뼈) 일부가 탈골돼 신경을 눌러 온몸에 마비가 오는 희귀병인 경추탈골증후군에 걸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한 데다 병원측으로부터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절망한 끝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전씨의 딸은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입을 벙긋거려 의사소통할 수 있고 음식도 씹어 먹을 수 있었던 상태로, 합병증으로 폐색전증(허파의 모세혈관이 막히는 증세)을 앓은 뒤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고 한다. 택시운전을 하다 4개월여 전 그만둔 뒤 특별한 직업이 없었던 전씨는 딸 치료비로 그간 2억여원 정도를 쏟아 부었고, 온 가족이 빚에 시달리며 불행을 겪어온 데다 병원비도 감당할 수 없고 조그만 희망도 찾아볼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전씨를 살인혐의로 구속했지만, 전씨는 종범(從犯)일 뿐, 이 살인사건의 주범(主犯)은 사회보장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중증장애인의 가족들을 살인자로 내모는 현재 우리의 사회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살인사건에 대한 책임은 전씨에게만 물을 것이 아니라, 사회에게도 동시에, 더욱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재발방지를 담보할 수 있는 사회보장체계의 개혁으로 귀결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러한 중증장애인에 대한 살인은 그야말로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매일매일 중증장애인을 힘겹게 부양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살인을 계획하게 만드는 그 가족들에게, 두 가지의 선택 중, 양자택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첫째는, 중증장애인을 죽이고 가족들이 살아나는 것이요, 둘째는, 중증장애인을 살리고 가족들이 죽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도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진정 사회가 중증장애인 가족들에게 제시해야할 카드는 그 두 가지가 아니라, 중증장애인과 가족들을 모두 살리고, 중증장애인 부양의 부담을 사회가 떠안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에 대한 방법론으로서 장기요양보호제도와 자립생활지원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자립생활운동의 창시자 에드 로버츠 역시, 전씨의 딸처럼 전신마비의 장애를 갖고 호흡기에 의존한 채 살아야했지만,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중증장애인을 죽게 하는 것, 혹은 살게 하는 것은 그 가족들이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어떠한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한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해,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계속해서 반대만 한다면, 우리들은 어느 날 자기 가족을 살해한 사회의 종범(從犯)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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