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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이구짜꼬! 눈티이가 반티이네"

첫째마당 - 심학규 눈멀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3-02-01 17:26
과거시험 경연장 : 전주 李漢七님의 포토앨범 에이블포토로 보기 과거시험 경연장 : 전주 李漢七님의 포토앨범
저녁늦게야 삯일에서 돌아온 곽씨 부인은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집안이 이상했습니다.

"보이소. 주무시능교?"

방문 밖에서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방안을 더듬어서 호롱불을 밝혀보니 남편이 없었습니다.

"생진 안하던 짓을. 이 양반이 어데를 갔을꼬?"

곽씨 부인은 이웃에 사는 귀덕이네를 찾아갔습니다.

"자로오이소. 그란데 다 저녁에 우짠 일인기요?"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던 귀덕어미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습니다.

"저어 우리집 양반 못 보셨능교?"

"아까 저녁다배 저어기 과수원 뒤 김진사댁 1)선산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더이만 아직도 안 왔는가베."

"우짜꼬 이 양반 한테 무신일이 생긴기 아니까예?"

"얄구져라, 설마 무신 일이야 있을라꼬?"

"아입니더. 생진 이런 일이 없었다 아입니까?"

곽씨 부인과 귀덕어미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귀덕아비가 무슨일인가 싶어 삽짝밖으로 나왔습니다.

"와, 무신일이고?"

"우리집 양반이 안 보인다 아입니까."

"그 참 벨일이네. 밤낮으로 글만 읽는 양반이 이 밤중에 어데를 갔을꼬. 한 분 찾아 보입시더."

귀덕아비는 이웃집 남정네들 몇 사람을 불러 오더니 관솔횃불을 만들어 앞장을 섰습니다. 과수원을 지나 선산으로 접어들자 마침 초아흐레라 상현달이 구름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는데 앞서가던 귀덕아비가 소리치며 달려 나갔습니다.

"저짝에 먼가 있는 것 같심더. 쌔기 와 보이소"

다가가서 횃불을 비쳐보니 심학규 그 양반이었습니다. 혼절해 있었는데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었습니다. 곽씨부인은 남편 위에 엎어지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이 일을 우짜꼬. 우짜믄 좋노. 보이소 정신 좀 채리이소. 우짜다 이리 됐능교?"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심학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이구짜꼬! 눈티이가 반티이네"

뒤 따라온 귀덕어미도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안되겠심더. 퍼떡 집으로 엥깁시더"

귀덕아비가 덜쳐업고 집으로 왔는데 방안에 내려놓고 보니 심학규의 얼굴은 참혹했습니다.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눈코를 가릴 수도 없고 여기저기 뻘건피는 엉켜 붙어 굳어 있었습니다. 놀라서 멍한 곽씨 부인에게 귀덕아비가 소리쳤습니다.

"머 하능기요. 아지매는 퍼떡 물 좀 떠 오소"

귀덕아비는 무명수건을 물에 적셔 피를 닦아 내면서 혀를 찼습니다.

"쯧쯧 이 양반이 다리를 헛 짚어서 꼬챙이나 어데 깃티에 눈을 찔릿는가베. 아지매는 손발이나 좀 문때 보소."

이웃에 살아 곽씨부인과 귀덕어미는 터 놓고 지냈지만 평소 귀덕아비는 심학규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쥐 뿔도 없이 마누라에게 삯일을 시키면서도 꼴에 양반입네하고 2)공자왈 맹자왈 하는 양이 아니꼬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친 사람을 그것도 이웃사촌인데 어쩌겠습니까.

"내 패내끼 읍내가서 의원 모셔 올낀께 아지매는 손발이나 부지러이 문때고 있서소"

곽씨부인은 맥을 놓았습니다. 귀덕어미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데운 물을 놋대야에 떠왔습니다.

"보소, 양반댁이, 이라고만 있을란교. 퍼떡 뜨신물 적시가 손발 좀 문때 보소"

곽씨 부인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눈물 콧물을 훔치며 더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심학규의 손바닥을 문질렀습니다.

"우짜다가 이 지경이 됐을꼬. 그는 만다꼬 갔을꼬."

귀덕아비가 의원을 모셔올 때까지도 심학규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심학규를 살펴본 머리가 희끗한 중늙은이 의원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의원은 몇 군데 침을 놓고 약가루를 개어서 상처에 붙이고 무명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눈을 다친 모양인데 세상 다시 보기는 다 그런 것 같심더. 상채가 안도지도록 약이나 잘 대리 매기소."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정신이 돌아온 심학규는 '내 눈, 내 눈'하며 몇 번이나 눈을 만져보더니 다시 혼절해 버렸습니다. 곽씨 부인은 일도 못나가고 일이 다 뭡니까. 죽을둥 살둥 허둥대며 그러나 의원이 준 약을 지극정성으로 달여 먹었으나 상처는 잘 낫지 않았습니다.

"이래 다치갖고 목숨보전 한 것만도 하늘이 도운기라예. 약이나 자알 대리 매기소"

의원은 올 때마다 수건을 풀어서 새 약을 붙이고 침을 놓고 약을 주었으나 갈 때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혀를 차며 갔습니다.

*****
1) 선산(先山) : 조상의 무덤, 또는 무덤이 있는 곳. 선묘(先墓). 선영(先塋).

2) 공자왈맹자왈(孔子曰孟子曰) : 공자왈 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일하지 않고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다만 공맹(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공리공론(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 하는 말.

이복남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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