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 골동품 七龍 홈에서

"이 양반이 그 눈을 해 갖고 어데를 갔을꼬"

저녁에 돌아 온 곽씨 부인은 방안에 남편이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건넌방 방문도 열어보고 뒷간에도 가보고 삽짝 밖도 내다보고.

"그 눈을 해 갖고 멀리 갈 수는 엄슬낀데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짓삔나"

곽씨 부인은 축담에 앉아서 망연자실해 저무는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기 무신 소리고?"

소리나는 곳을 조심조심 따라가 보니 헛간이었습니다. 가마니 문을 들추니 그곳에 남편이 쓰려져 있었습니다.

"보이소오. 이기 무신 일인기요. 와 여게 와 있능기요?"

남편을 흔들어보던 곽씨 부인은 옆에 나둥그러진 독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 양반이 1)잿물을 마싯는가베. 아이고 이 일을 우짜꼬, 우짜믄 좋노."

곽씨 부인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내가 이라믄 안되제. 호래이 자테 물리가도 정신은 채리라 켔는데."

곽씨 부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살펴보았습니다. 죽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음을 확인 한 곽씨 부인은 삽짝밖으로 내달았습니다.

"봉화네, 봉화네 있능기요.?"

곽씨 부인은 무당 봉화에게로 달려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자로 오이소. 그란데 우짠일인기요?"

부엌에서 저녁밥상을 차리던 봉화네가 놀라서 뛰쳐 나왔습니다.

"봉화네, 우리집 양반이 잿물을 마싯는갑는데 우짜믄 조심니꺼?"

"마이 마싯는가? 잿물 마신 데는 살무리를 갈아 멕이이소. 그라믄 갠찬을낌니더."

"고맙심더. 고맙심더"

곽씨 부인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다시 집으로 달렸습니다.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한줌 바가지에 담아서 박박 문질러 씻었습니다.

"안되제 안되고 말고. 이 양반이 죽으믄 안되제. 삼신 할매요. 조상님요. 지발 우리 집 양반 좀 살리주이소."

쌀을 씻는데 설움이 북받쳐 쌀바가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치마 단을 뒤집어 눈물 콧물을 닦고 조리를 찾아 쌀을 일었습니다. 그리고는 장독대로 가서 항아리 뚜껑 하나를 벗겼는데, 쌀을 갈 기구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곽씨 부인은 다시 집 앞 냇가로 달렸습니다. 냇가에서 굴러다니는 몽돌 하나를 주어 왔습니다.

"내가 정신을 채리야제. 정신을 채리야제."

곽씨 부인은 미친 듯이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중얼거리면서 항아리 뚜껑과 몽돌을 잘 씻어 그 속에 쌀 을 넣고 몽돌로 갈았습니다. 쌀이 갈아지자 물을 조금 부어 잘 저어서 허연 쌀물만 대접에 부어서 심학 규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심학규는 정신이 없었기에 숟가락으로 떠 넣는 쌀물이 반은 입으로 들어가고 반은 흘러 내렸습니다.

"보이소. 제발 정신 좀 채리이소"

심학규에게 쌀물을 떠 넣는 곽씨 부인은 눈물이 범벅이라 연신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훔쳐야 했습니다.

"나를 두고 혼차 가믄 나는 우째 살라꼬 이카는기요?"

곽씨 부인은 남편 심학규의 입에다 연신 숟가락질을 하는데 눈물반 쌀물반을 떠 넣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대접의 쌀물이 다 비워졌을 때쯤야 심학규는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인자 정신이 좀 드는기요? 이녁 엄시 나 혼차 우째 살라꼬 지를 두고 혼자 갈라 했던기요?"

곽씨 부인은 남편 심학규가 살아 난 안도감에다 원망과 설움이 북바쳐서 처음으로 남편 심학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남편 앞에서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곽씨 부인이었는데 서러움의 봇물이 한 번 터지자 걷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꺼이꺼이 목을 놓아 한참을 울고 난 곽씨 부인은 남편을 일으켜 방으로 데려 갔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카는데 눈 몬 본다꼬 죽을낌니까. 지발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마이소. 사람 목심보다 더 기한 기 엄다카는데 이래 가뿌리믄 지 혼차 우짜란 말인기요? "

"미안하요. 인자 안그럴낀께 너무 걱정마소"

"잿물이 쪼매 뿌이라서 천만다행입니더. 지가 엇저녁다배 개울에서 서답을 빨았거던예. 마이 있어서믄 우짤 뻔 했심니꺼. 그 보이소 인명은 재천이라 안캅디까"

곽씨 부인은 남편 심학규가 다시 살아 난 것이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이래 눈을 감고 살믄 머하겠소. 차타리 내가 엄서믄 임자라도 팬히 살끼 아이겠소."

"이녁 엄시 내 혼차서 우째 팬히 살끼라꼬 거캅니꺼."

"인자 과거 보기도 다 글럿고, 내가 산들 머하겠능기요. 밥만 축낼 낀데."

"너무 그카지 마이소. 그라고 인자 과거를 볼 수도 엄겠지마는 배슬, 그것도 알고 보이 벨 것도 아이데예."

"그기 무신 소리요?"

"배슬하는 양반들은 말캉 도둑놈들이라 카데예."

"아이 이기 무신 소린기요. 아인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임자가 우찌 그런 소리를..."

"지도 다 암니더. 접 때 관아에서 사또가 우리 자테 약값 하라꼬 백냥 줏지예? 우리 사 그것도 고맙지만서도. 그란데 사또는 우리을 팔아서 사백냥을 벌었다 안캅니까, 그기 도둑놈이 아이고 먼데예?"

"임자,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는 기 아이요. 누가 들르마 우짤라꼬."

"이 밤중에 누가 듣는다꼬. 그라고 소문 들으이 우리 사또는 사또 배슬도 돈으로 샀다캅디더."

"허허 그참."

심학규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소문 들으이 양반도 배슬도 다 돈 주고 산다 캅디더. 우리는 돈도 엄섰지마는 이녁도 돈 있었으마 돈으로 배슬 살라?던기요?"

"그기 무신 소리요. 선비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전에는 지도 잘 몰랐지만서도 설마 이녁은 아니겠지예? 그란데 다른 양반들은 배슬도 다 산다 캅디더. 돈을 마이 주고 배슬을 샀서이 배슬하믄 본전 차을라꼬 또 도둑질을 한다카데예."

"인자 그만 하소. 그란데 임자는 나도 잘 모리는 이바구를 어데서 들었소? "

"와예? 지가 없는 말 하는기요? 지도 기꾸멍이 뚤리서이 들리데예. 그카고 그런 도둑은 눈 버히 띠고 하는 도둑질이라 나라에서도 몬 잡는다네예. 그라고 도둑질 하는 양반이나 잡으라는 양반이나 다 같은

팬이라서 자기들끼리는 몬 잡는기 아이라 안잡는다 카데예. 그래 어데 할 짓이 엄서서 힘 엄꼬 불쌍한

백성들 등골 빼묵는 도둑질 할라꼬 배슬 할낌니꺼?"

"그런 소리 마소. 그도안 내가 공부 한거도 다 배슬 할라꼬 한긴데..."

"이녁이 눈 감은 기 차라리 잘 된 일이라예. 내사 마 엄시 살아도 도둑질은 안할낌니더. 죽어서 그 죄를 우째 받을라꼬. 그러이 너무 그캐샀지 마이소오"

곽씨 부인은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심판이라도 받는 듯 몸서리를 치며 남편 심학규가 벼슬 안하기를 잘 한 일이라며 몇번이나 강조하였습니다. 그렇게 심학규와 곽씨 부인은 오랜만에 두런두런 세상살이 이야기를 밤 늦도록 나누었습니다.

곽씨 부인은 가난한 살림에 오랜 병구완에도 불구하고 지청구 한마디 하지 않았으니 심학규는 선녀같은 곽씨 부인에게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내가 눈 감은 기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심학규는 곽씨 부인의 그 말이 오히려 가시 되어 가슴에 박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

1) 잿물 :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식물의 재를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육지식물의 재에는 탄산칼륨(K2CO3)이 들어 있어 이것을 논밭에 뿌려주면 물과 반응해 식물에 꼭 필요한 칼륨이온(K+)을 공급하는 칼륨비료가 되며, 수산화이온(OH-)이 생성돼 토양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리고 식물의 재에 물을 부어 얻는 잿물은 세정작용이 있어 때를 잘 제거하기에 세제나 표백제로 이용해왔다.

그런데 서양에서 들여온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은 동물성 단백질을 잘 녹이기 때문에 찌든 때의 세탁에 효과가 있다. 잿물처럼 세탁력이 있고 서양에서 온 것이므로 양잿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은 강한 부식성이 있어 극약으로 취급받는다.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이 피부나 옷에 묻었을 경우 즉시 깨끗한 물과 5-10%의 황산마그네슘 수용액으로 씻어야 하며, 눈에 들어간 경우에는 각막이 망가져 실명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재빨리 대량의 물(가능하면 붕산수)로 잘 씻어낸 뒤, 즉시 안과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이 용액을 마셨을 경우 토하게 하지 말고 다량의 물이나 식초를 마신 다음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