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 /전국정님의 조선엽서

"양반 댁이, 요새 예비당에 나간다믄서"

여름이 가고 가을도 깊어진 어느 날 곽씨 부인은 읍내 장터에서 장승상댁 안살림을 맡아보는 나이 많은 하님을 만났습니다.

"야. 우리집 양반 눈 한분 고치볼라꼬예"

"그어 가믄 참말로 자네 서방 눈뜬다 카더나?"

"전도사님이랑 그캐사이 그런줄 알지 지가 멀 알겠심니까."

"그카지말고 저어 장터 기티에 1)판수자테 한번 안가볼라나? 그 판수도 2)소경이라 카더라."

"소경 판수가 눈을 뜨게 한다카믄 자기는 와 몬 뜨고 소경이 돼 갖고 판수질을 한답디까?"

"자네는 중이 제머리 몬 깎는단 말도 몬 들어봤나. 참말로 용타 카더라. 건너마을 박생원댁 마나님도 다 죽어 가는 거를 살릿다카더라."

곽씨 부인은 하님과 헤어져 오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약도 소용없고 굿도 소용없고 예수님도 신통잖아 보였습니다. 소경 판수라. 한번 찾아 가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기신기요?"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아담한 초가인데 서너간은 되어 보였습니다.

"저어 여게가 소경 판수집이 맞는기요?"

판수의 안사람인 듯 싶은 아낙이 나와서 곽씨부인을 맞았습니다.

"자로 오이소. 육갑보러 왔능기요. 경읽으러 왔능기요?."

"판수님을 만나봐야 어짤지를 알지..."

아낙은 대청마루를 지나 곽씨부인을 안내하였습니다.

"손님이 오싯는데예"

"들어 오시라 하소"

"들어가 보이소"

아낙이 열어주는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탁자를 앞에 두고 의관을 정제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나이는 마흔은 넘은 것 같고 눈에는 검은 헝겊을 둘러 뒤로 묶고 있었습니다.

"안자 보이소"

곽씨부인은 조심스레 판수를 살피며 그 앞에 놓여진 방석에 앉았습니다.

"그래 우째 왔능기요."

"저어..."

"에러버 말고 야기 해 보이소. 여 오는 사람들은 다 곡절이 있어 오니께 말씸해 보이소."

"지는 도화동에서 왔는데요. 판수님 자테 머 쪼개이만 물어볼라꼬예."

"도화동이라 카믄 심씨 양반인기요?"

"야 맞심더, 건데 우째 알았능기요?"

"그 양반 이바구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우째 모르겠능기요. 내 한번은 올 쭐 알았심니더."

곽씨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콧끝이 찡하게 아려왔습니다.

"알고 지신다카믄 긴말 할 필요도 없겠네예. 우리집 양반 우짜믄 좋겠심니까?"

"사주나 한번 대 보이소."

곽씨부인은 남편 심학규의 생년월일시를 불러 주었습니다. 판수는 손가락 마디로 육갑을 짚어 나갔습니다.

"임오생이라 갑자을축병인정묘 가설나무네 태세성(太歲星)은 명운(命運)에 천복(天福)이 들어서이 태어나기는 잘 태어났구만"

"잘 태어나믄 머하겠능기요. 지금 이 고생인데."

"임오생 칠월이라 월건성(月建星)이 천고(天孤)니 중년에는 고생할 운이요"

"조실부모하고 고생이사 할만큼 했지싶심니다만 우째 눈까지 멀어서..."

"칠월 열사흘이라 월진성(日辰星)에 천도(天刀)가 들어서이 부부가 갈라질 운세고."

"그기 무신 소린교? 엄시 살아도 여즉 큰 소리 한번 안내보고, 설마 우리집 양반이 첩사이를 두지는 않을끼고. 아무리 서방이 뱅신이라 캐도 지가 서방질을 할 사람도 아인데 갈라서다이 그런일은 절대로 엄슬낍니더."

"그기사 두고 보믄 알끼고 사주에 3)고신살(孤神殺)이 끼었으이 부부운은 평탄지 몬하겠고 자손도 귀한 운세라 여즉 자슥이 엄지요?"

자식 얘기가 나오자 곽씨 부인도 할말을 잊었습니다.

"사내는 몰라도 여슥아는 하나쯤 두겠네요."

"지는 자슥이 아이라 우리집 양반이 눈을 뜨겠는지 몬뜨겠는지 그기 문제라예."

"중년(中年)에는 천상(天上)에 득죄(得罪)한 명운(命運)이 깊어 갖은 고생과 시련을 겪을 액운(厄運)이니 난들 우짜겠능기요."

"우리집 양반 눈을 감은 기 다 팔자란 말인기요."

"내사 잘 모리지요. 월지에 4)탕화살(湯火殺)이 끼어서이 화상이나 부상으로 몸을 상하거나 음독을 하거나 할 팔자요."

"접때 봉화네도 그캐삿더이만 눈 먼것도 사주에 나온다 말인기요."

"도화동 무당말인기요? 그 무당 굿 잘한다꼬 소문이 자자하더이만 그리 나오던 갑네. 사주에 그리 나와 있는 것을 난들 우째 알겠능기요. 가마이 이서 보이소. 칠월 열사흘 오시라, 가마이 있자 이거 시운성(時運星)에는 천복(天福)이 들어서이 허허 그참...말년에는 자슥 덕에 광명(光明) 찾고 태평성세(太平成歲)를 누리겠다카네요."

"광명을 찾다이, 그카믄 눈을 뜬다 말인기요."

"내사 사주대로 본 것 뿌임니다."

"그러키, 사주가 그러타카이 우짜겠능기요. 지도 그럴 줄 알았심니더."

"그카믄 마로 왔능기요?"

그랬습니다. 곽씨부인이 소경판수를 찾아 온 것은 남편 심학규의 사주팔자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판수님에 대해서 쪼매이만 알고 지버서 왔심니더."

"알고 지븐기 먼기요."

"판수님은 우짜다가 소경이 되었심니까?"

"그건 알아서 머할라꼬요"

소경 판수는 좀처럼 입을 열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우리집 양바이 하루아침에 날벼락 맞듯이 눈이 저래 돼 갖고, 버얼써 잿물도 한분 마시심니더. 앞으로 우짜믄 좋을지 몰라서.... 판수님은 우째 이런 좋은 재주를 배우게 되었는지..."

곽씨부인은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미안심더. 판수님도 앞을 못보이 그 심정이야 오죽하겠심니까. 엄는 살림에 그래도 과거나 한 분 볼라꼬 몇년을 고생고생 했는데 인자 그것조차 몬해 볼 처지가 되고 보이..."

곽씨 부인은 말문이 터지자 남편 앞에서는 차마 못한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

1)판수 : 점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남자 소경

2)소경(少卿) : 고려시대 종4품 벼슬, 눈이 멀어 앞을 못 보는 사람

3)고신살(孤神殺) : 상처살(喪妻殺)이라 하는데 남녀를 막론하고 이 살이 있으면 부부운이 평탄치 못하고 이별, 독수공방하게 된다.

4)탕화살(湯火殺) : 탕화란 몸에 흉터나 부상을 입는 살이다. 불이나 끓는 물에 화상을 입거나 다치거나 음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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