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제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장애인의 접근성이 허락되지 않다면 그것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계룡산, 지리산, 설악산, 안면도, 삼척 앞 바다, 한려수도 등 절경이 뛰어난 곳을 아무리 이야기 하여도 장애인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누리고 즐기고 쉼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은 아직도 "집 안에 죽 치고 집을 지켜야 할 존재"이지 여가선용을 위하여 "떠나서 누릴 수 있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지난 7월 1일 카나다 캘거리의 밴프(Banff)라는 곳에 갔다. 알고보니 세상에서 두번째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의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사실이었다. 록키산맥(Rocky Mountain)이 거대하게 펼쳐지는 그 곳에 곳곳마다 우리의 숨통을 튀게 하는 아름다운 호수들의 연속, 그리고 곰과 엘크, 산양들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그곳, 게다가 수천년 역사를 가지고 아직도 그 자리에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빙하(Glacier)의 장엄함은 우리네 인간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한번 밴프에 오시면 다시 찾게 됩니다"라는 가이드의 맨트는 어느덧 "나도 다시 와야지"라는 결단을 하게 했고, "이곳에 장애인 가족들이 와서 살면 더욱 좋겠다"라는 결심을 재촉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재촉했다. 밤새 고열과 건조함 때문에 시달린 나를 깨워서 빙하가 뒤덮인 곳으로 가자는 것이다. 명색이 장애아동보육시설협의회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나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빙하가 뒤덮인 곳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몸을 실은 나는 사람들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 영문도 모르고, 가야할 곳도 모른 채. 조금 기다리니까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이 된 차가 내 앞에 섰다. 여기까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차는 김포공항에서 수도 없이 탔으니까.
얼마 안가서 나를 그 차에서 내리더니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는 거대한 버스 앞에 나를 세웠다. 사람들은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쇠로 만들어진 조그만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구 저 버스를 어떻게 타!"
한숨과 탄식이 나올 즈음, 갑자기 버스 뒷 켠에 있는 쪽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기중기 같은 무엇인가가 굉음을 울리면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휠체어 리프트였다. 이 차는 설상차(雪上車:빙하 위로 달리면서 빙하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차)였다. 이 차에로 리프트가 설치되어 장애인도 빙하위로 달리도록 제작한 것이다. 나는 리프트에 몸을 싣고 차에 올랐다. 젊은 카나다인은 차에 올라탄 휠체어가 흔들리지 않도록 안전벨트(Safty belt)를 차 바닥과 휠체어를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아주 견고하게. 알고 보니 이 차는 경사로 60-70도가 되는 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고, 빙산 위에서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휠체어는 흔들림이 없었다.
빙산 위로 달리는 기분. 그리고 빙하 위에 내려서 휠체어로 거니는 기분! 그 누가 알 것인가! 나는 일반인들이 가는 곳에 역시 장애인도 함께 가도록 만든 이들의 철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땅에서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놀러가면서도 "이 자리에서 짐좀 잘 지켜줘"라는 말을 늘 듣고, 익숙해져버린 장애인들. 짐을 안지키고 그 자리를 떠나서 함께 누리려면 지독할 정도의 각오와 결단 그리고 도전이 필요했던 우리들의 여가문화.
그러나 이국땅 카나다에서 나는 그러한 도전, 결단, 각오는 불필요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왜쳤다. "다리가 필요없네요!" 앉아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 "다리가 불필요한 것 처럼 느껴지는 세상" 우리 땅에는 언제나 이러한 세상이 다가올까.
"장애인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곳은 전혀 없는 세상"을 우리는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