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이고 강렬한 영화 <느린 남자>. ⓒ시마필름

한 달전, <프릭스>를 소개하면서 <프릭스>를 알게된 계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지면이 모자라 말하지 못했다. <프릭스>는 오늘 소개할 영화 <느린 남자> 때문에 알게 되었다. 2005년 리얼판타스틱영화제에서 <느린 남자>라는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고, 집에 돌아와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프릭스>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느린 남자>는 국내에 출시되어있지 않아 쉽게 구할 수는 없겠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글을 시작한다.

느린 남자

감독: 시바타 고/83분/2004년

줄거리:

어느 날 여학생 자원봉사자 노부코가 논문 자료를 얻기 위해 장애인 스미다를 찾아온다. 스미다는 노부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돌봐주는 다른 활동보조인 타케의 밴드 공연에 노부코를 데려간다. 하지만 노부코는 오히려 타케와 가까워지고, 스미다는 감정의 격류에 휩싸이고 만다.

영화잡지에 소개된 줄거리만 보고서는 중증장애인이 도우미에게 갖는 애틋하고 애처러운 감정선이 펼쳐질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기대는 깜짝 살인들과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 사이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또한 중증장애인의 연쇄 살인이라는 낯선 설정은 무척이나 놀라운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줄거리보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그 순간의 느낌에 집중할 때 그 진가를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항상 느릴 수밖에 없는 그는 겉으로는 느리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건 오해다. ⓒ시마필름

움직일 때마다 사지가 뒤틀리고 뭐든지 지저분하게 흘리면서 먹는 스미다씨. 그는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밝힌다. 음성 전달기를 두드려서 의사표현을 하기 때문에 항상 느릴 수밖에 없는 그는 겉으로는 느리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건 인상일 뿐이다. 느리고 평화로워 보이기 때문에 안분지족의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관객들의 일차적인 편견이다. 스미다씨는 83분의 러닝타임 동안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종횡무진하며 관객들의 편견을 흔든다. 영화 속 스미다씨를 연기한 실제 스미다씨의 바램은 감동적이거나 눈물 짜내는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하여 스미다씨와 시비타 고 감독은 <의리없는 전쟁>,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수많은 AV(adult video=성인용 에로 비디오)를 보면서 같이 내용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 스미다씨를 연기한 실제 스미다씨는 휴먼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시마필름

그렇게 만들어진 <느린 남자>는 질투심에 못이겨 자신의 활동보조인을 살해하고 그것을 계기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산책길에 마주치는 운동선수, 외로운 밤길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진작가, 술에 취한 회사원….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난도질당하고 스미다씨 또한 침묵 속에서 칼을 휘두를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자기검열.

‘왜 하필 저 연쇄살인범을 중증장애인으로 설정한 걸까?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서 공포감을 갖게되면 어떡하지?’

곧바로 받아치는 또다른 내면의 목소리, ‘그럼 연쇄살인범은 꼭 비장애인이어야 한다는 거야?’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양극단의 반응을 보이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시마필름

이 영화가 도발적이면서도 새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이 살인을 한다’라는 설정에 주목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미세한 차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요소 중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는 ‘장애인은 착하고 약하고 보호받아야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의 틀을 동시에 적용하는 것과 같다.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대상과의 신뢰가 형성되고 그 사람을 진정 이해하게 되었을 때 장애는 그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내게도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다. 미디어교육 때문에 알게 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휠체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장애는 그녀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렇다. 그러나 영화에 장애인이 등장할 때, 여전히 그 인물의 장애만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은 가볍게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직도 영화와 장애는 첫 만남 혹은 두 번째 만남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스미다씨가 특히 싫어한다는 영화 <엘리펀트맨>. ⓒ에스엠픽쳐스

현실의 스미다씨의 바램을 시바타 고 감독은 영화로 만들었다. 친구가 만든 영화에서 스미다씨의 장애는 그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로만 배치되어있다. 오히려 반발하는 것은 관객들이다.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에도,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에도 많은 비장애인들이 물었다고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살인이라는 설정을 이용한 것인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평등한 모든 인간은 서로 동일하지 않다. ⓒ시마필름

그러나 시바타 고 감독의 의도는 그 문제보다 훨씬 더 나아가 있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아무 이유 없는 살인이 많아져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누군가가 특정인을 살인할 때 어떤 이유가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 왔지만 이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동안 소외된 인간이 자기표출이라는 형태로 별 이유 없이 살인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소외된 인간이 자기표출이라는 형태로 별 이유 없이 살인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마필름

친구 사이가 되면 더 이상 장애는 부각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남, 남과 다른 나라는, 단지 그 수준에서 확인되는 차이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평등한 모든 인간이 서로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평등하면서도 동일하지 않은 인간들은 그렇게 서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덧붙이자면 영화의 내용과 크게 상관없는 부분에 자꾸눈이 갔다. 시간대에 맞게 세 명의 활동보조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스미다씨의 일상. 부각되지도 않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일 뿐이었지만 부럽다는 생각, 우리도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그런 생각들이 내내 마음에 머물렀었다. <느린 남자>를 다시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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