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중 바닷가에서. ⓒ고동운

미국에서는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시작으로 여름휴가철이 시작되어 9월 첫째 월요일인 노동절에 끝이 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휴가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연중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학교가 방학을 하는 7-8월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휴가시즌이다.

나는 8월말에 열흘가량 휴가를 다녀왔다. 한국에서 놀러온 아내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처음 이틀은 말리부 계곡으로 캠프를 갔다. 시내에서 30여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져 내릴 듯이 많았다.

남가주는 여름이 건기이기 때문에 산불방지를 위해 불씨가 날리는 생나무로는 캠프파이어를 할 수 없어 대패밥을 눌러 만든 나무로 기분을 냈다. 그 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었다.

캠프장에서 서쪽으로 20여분 꼬불꼬불한 산길을 운전해서 나가면 태평양 바다를 끼고 도는 1번 국도가(pacific coast highway)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사람들이 좀 적게 모인 해변가로 갔다.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는 비치파라솔이나 튜브 등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없다. 음식 등을 파는 상인들도 없다. 각자 준비해서 가야만 한다. 일행 중에는 나 말고도 휠체어 장애인이 한명 더 있었다.

아내와 친구들은 바다로 향하고 우리는(두 명의 장애인) 수상안전요원의 망루 아래 그늘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공원 경비원이 오더니 바닷가에서 쓸 수 있는 휠체어가 있는데 사용해 보겠느냐고 물어왔다. 좋다고 했더니 차를 돌려 휠체어를 가지러 갔다.

잠시 후 그는 풍선 같은 모양의 커다란 고무바퀴가 달린 해변용 휠체어를 한 대 가지고 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공원에 가서 한 대를 더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존’이라는 이름의 그는 장애인이 해변용 휠체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즐겁다며 무척 좋아했다.

그날 우리는 난생처음 바닷물이 손에 닿을 듯 바다 가까이까지 갈 수 있었다. 만약 수영복을 준비해 가지고 갔더라면 바다에도 들어 갈 수 있었을텐데….

침실에서 도마뱀을 발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우리 집 뒤로 난 작은 언덕에는 다람쥐와 들쥐, 도마뱀 등이 살고 있어 심심치 않게 뒷마당까지 내려오곤 한다, 아마도 거실에서 자며 덥다고 문을 열어놓은 사이 도마뱀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혹시라도 놀랄까봐 친구들에게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헐리웃 볼에서 본 조지 벤슨의 공연을 끝으로 친구들은 돌아갔다. 누추한 집을 찾아주고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간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맞이한 노동절 연휴에 아내와 난 오랜만에 집에서 쉬기로 했다. 아내가 만들어 주는 맛난 음식을 먹으며 책을 읽고 인터넷 바둑을 두고 TV를 보며 놀기 위한 휴가가 아닌 쉬기 위한 휴가를 즐겼다. 그러나 막상 휴가의 끝자락에는 이렇게 계속 놀기만 하면 사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한 주를 보내고 맞이하는 주말이 더 달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여일 만에 출근하는 화요일 아침, 그동안 해가 짧아졌는지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산 위로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9월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벌써 높아 보인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는 때 이른 가을이 보인다.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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