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원회 앞 1인 시위(김철환 장애누리 활동가). ⓒ김철환

길어도 1~2주면 끝나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지난 1월 말 시작한 1인 시위가 지난달 말 100일을 맞았다. 주말과 공휴일은 빼고, 비가 많이 오는 날도 빼가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1인 시위를 6개월 동안 하게 되었다.

지난 1월 초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이하 장애누리)가 인수위원회에 홈페이지를 모니터 하다 장애인이 접근이 어렵게 만들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인수위원회 측에 수정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인수위원회는 묵묵부답이었고, 장애누리는 인권위원회에 이 문제를 가지고 진정을 냈다. 인수위원회는 장애누리가 아니라 인권위원회에 홈페이지를 수정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장애누리는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장애인관련 정책들 또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장애인의 정보와 방송통신정책의 분리였다. 장애누리는 안되겠다 싶어 인수위원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고자 인수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다.

장애누리는 1인 시위를 통하여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장애인의 접근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조속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보와 방송통신 분리정책을 담은 정부조직개편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정부조직개편안이 인수위원회 안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정당과 국회에 의견을 전달하여 법안 심의 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안 심의가 들어가자 1인 시위 장소도 국회 앞으로 옮겼다.

국회 앞 1인 시위. 김철환 장애누리 활동가(왼)안세준 장애누리 회장. ⓒ김철환

이와 함께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 서면과 방문을 통하여 장애인의 미디어 문제를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애누리라는 작은 단체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이명박 정권의 오만함이 드러난 것일까?

인수위원회는 임기가 다하자 일언반구 없이 장애인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던 홈페이지를 폐쇄해 버렸고, 정부조직개편안은 인권위원회의 독립, 통일부와 여성부 존속 등 몇 개의 사항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국회를 통과해 버렸다.

정부조직개편안의 본회의 통과 이후에도 장애누리는 이 문제를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국회에서의 1인 시위는 당분간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25일 국회에서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1인 시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곳에서 취임식을 지켜보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로 국회 앞은 인산인해였다. 이날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지 못하고 국회 건너편 도로 폴리스라인이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1인 시위를 시작하지마자 사복경찰이 다가와 시위를 접을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자 경찰들이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50m쯤 질질 끌고 갔고 전경 20여명이 둘러싸 나가지 못하게 고립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시위 패널이 깨졌고, 찰과상을 입었고, 1인 시위를 취재하던 카메라 기자와 경찰 간의 마찰이 있었다.

장애인 미디어권 요구 및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 철회 기자회견(장애누리, 420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주최). ⓒ김철환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간 통폐합이 진행되었다. 방송과 관련하여서도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일부 기능이 합쳐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방통위 위원장으로 최시중씨를 임명했다.

장애누리는 최시중씨가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씨와 매우 친밀한 관계이며 대통령의 최측근이기에 방송과 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의 수장은 위험하다는 취지에서 반대를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이명박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다분히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강조했던 경제 활성화의 원칙을 방송과 통신에도 도입하여 장애인 등 방송소외계층을 더 어렵게 만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누리는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정확히 밝히기 위하여 지난 3월 28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 공동으로 방통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기자회견은 방통위는 출범 초기인 만큼 장애인 미디어의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라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기자회견 후 장애인의의견을 전달하기 위하여 방통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이 있기도 하였다.

장애인 미디어권 대안 마련 토론회(장애누리, 420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주최). ⓒ김철환

이와 함께 지난 해 말 제정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이하 IPTV사업)법 제정과정에서 장애인 등 시청자의 권리가 누락된 점을 지적 1인 시위를 통하여 부각시키기도 했다.

IPTV사업법에서의 문제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의 이행에 대한 방안을 만들기 위하여 4월 중순에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10일이 되는 4월 21일 장애인차별 집단진정에 장애누리도 참여하여 장애인미디어 관련 차별 등 20여건이상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내기도 하였다.

3월 초부터 장애누리는 1인 시위 장소를 방통위로 옮겼는데, 장애인 미디어의 문제점을 언론시민단체와 정치권에 알려나가는 한편, 4월부터는 장애계에 미디어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등 미디어운동의 토대를 만드는데도 관심을 가졌다. 5월부터 진행된 1인 시위는 IPTV사업법에 있어서 장애인의 방송시청권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4월부터 진행한 장애인단체간 연대체 구성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몇 단체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가능성도 집작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 5월 23일에는 장애누리와 시각장애인연합회 등 장애인단체의 연대 이름으로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였다.

이 기자회견은 IPTV사업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는 자리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공청회 발제와 토론으로 참여하는 언론시민단체 관계자와 방송학자들에게 IPTV에 있어서 장애인 접근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알려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장애누리 1인 시위 100일 기자회견(국회 본청 정론관). ⓒ김철환

5월달 부터는 점점 노골화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과 방송장악에 대한 비판과 이를 막아내기 위한 몸싸움도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방통위 로드맴에 대한 비판을 하는 등 근본적인 장애인미디어 정책이 부재한 정부에 대안을 촉구하였고, 지상파방송사업자에서 민간방송자까지 장애인접근권 확대와 방송발전기금 지원 확대, 방송 매체 간 기술적인 호환성 검토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정책개선을 촉구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는 과정에 IPTV사업법 시행령 제정 공청회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이 제공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차별인으로 진정을 내기도 하였다. 이 진정으로 방송위에서 향후 진행하는 행사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철저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지난 7월 11일 국회개원에 맞추어 1인 시위는 방통위에서 국회로 옮겨 왔고, 국회개원연설을 위하여 국회를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를 알리기 위한 1인 시위도 진행하였다. 그리고 지난 7월 31일에는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1인 시위 100일 정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방통위 잎 1인 시위(황신구 장애누리 회원). ⓒ곽상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애누리는 100일 동안 1인 시위만이 아니라 장애인의 미디어권의 실태와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진행하였다. 장애인 미디어권 요구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저지하기 위한 기자회견과 싸움들, IPTV사업법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장애인 단체들과의 기자회견, 언론단체들과 같이 진행하였던 기자회견들, 장애인 미디어권에 관한 토론회,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에 맞추어 진정하였던 장애인 미디어 차별 인권위원회 집단진정,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인권위원회 진정 및 공개서한 발송, 미디어 사업을 하는 장애인단체들의 운동 결속을 위한 시도, 그리고 수많은 성명과 논평의 발표들이 그것이었다.

100일 동안 진행한 1인 시위와 장애인단체들과 언론시민단체들의 장애인 미디어권에 대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최근 방통위가 내놓은 장애인 미디어 지원 사업을 보면 지상파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책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정책도 장애인의 미디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방통위 정책의 실효성의 문제도 있지만, 방송과 통신 융합이 진행되면서 장애인 미디어권도 과거의 방식대로 방송접근권만 가지고 논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서 장애인 미디어권에 대한 논의는 방송을 어느 정도 시청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미디어 전반에 걸친 접근 및 참여로 확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3월 28일 방통위 앞 기자회견 후 장애누리 안세준 회장(오른쪽)이 방통위 관계자에게 장애인 미디어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김철환

그동안 장애누리가 진행했던 100일 동안의 1인 시위는 어쩌면 요식행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인 시위를 통하여 장애인 미디어권 문제를 장애계 내부뿐만 아니라 언론시민단체에 알리는데 일조를 하였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방송통신위원회 장애인 정책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1인 시위과정에서 장애인 미디어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방송접근이라는 단편적인 문제만 부각시켰다는 문제점도 분명히 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장애누리는 1인 시위 100일을 정리하며 장애인 미디어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기 위한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방송에서의 접근권을 위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과 IPTV관련 법률의 개정운동이다. 그리고 정보접근과 방송통신 소외계층 정책의 통합, 공익채널과 프로그램의 확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정책 확보를 위한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과 방송장악의 폭압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도외시한 장애인의 권리 확보는 의미가 없음을 인지하며, 지금까지 그러했듯 언론시민단체들의 싸움의 대열에 계속 동참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애누리의 향후 계획은 장애누리라는 개별 단체의 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미디어 사업을 하는 장애인단체들이 같이 풀어가야 한다고 보며,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누리는 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장애인단체나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데도 역점을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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