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케이블을 디지털로 바꾼 후 KBS를 24시간 볼 수 있게 되었다. 난 시간에 맞추어 보아야 하는 드라마보다는 건너 뛰어도 별 지장이 없는 오락프로를 좋아한다. 그 중 아내와 함께 즐겨보는 김수현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는 예외다.

미주의 한인사회에서는 한국비디오 대여가 큰 사업이다. 수익사업인 비디오업계를 지키기 위하여 KBS와 MBC는 공중파 방송의 경우 8주, 케이블의 경우 4주의 시차를 두고 방송을 한다. 즉, 나는 한국에서 4주전에 방송된 드라마를 보게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방영되는 편에서는 극중의 김한자 여사가 이미 집을 나왔다고 들었다.

지난주 내가 본 그녀는 마침내 가족들에게 가출을 선언했고 1년간 휴가를 달라고, 40년 이렇게 살았으니 나도 내 살고 싶은대로 한번 살아보겠노라고 울부짓고 있었다.

효자인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때 3년 휴가를 주마고 달래보지만 그녀의 말인즉 ‘아버지는 100살까지 사실텐데 그때는 내 나이도 70이야.’

그날 난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대사가 구구절절히 가슴에 와닿았다. 정말이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멍에와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퇴근하면 집으로 달려가 저녁을 지어먹어야 했고, 주말이면 게으름 피우는 아이들을 달래 빨래도 하고 집안도 치워야 했다. 미국에서 30년을 살았어도 언어와 문화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부모님들은 사소한 일에도 내게 기대어 왔다.

가족과 회사는 내게는 다소 벅찬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고 난 그들 앞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때 가끔씩 내가 느꼈던 느낌이 바로 ‘이대로 살다 죽는다면 내 인생 너무 억울하다’ 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났다. 그후 사는 일에 다분히 여유가 생겨났다.

혹시나 아내가 대신 나의 멍에를 지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싶다.

아내는 지금 서울에서 온 친구들과 잠시 여행 중이다. 그동안 손 놓았던 집안 일을 다시 하자니 아내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작은 그녀가 남겨놓은 빈자리가 참 크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는 늦잠도 자고 혼자 커피도 마시고 밥하기 싫으면 사 먹는다. 하루종일 책보고 서예 배우고 결혼식 때 이후 한번도 못해 본 매니큐어를 바른다. 아깝다며 돈 주고 사보지 못한 장미 세 송이를 사서 꽂아 놓고 거울보며 화장한다.’ 앞으로 4주후에 보게될 김한자 여사의 모습이다.

그녀가 말하는 자유라는 것이 별 것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족끼리 조금만 배려하면 일상에서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것들이다.

자유를 만끽한 그녀가 일년 후 휴가를 마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 올지 궁금해진다. 그 때 심정은 어떨까.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