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서 화상 장애인과 같이 생활했었던 건 2번 있었다. 한번은 직업재활원에서 만났던 누님한분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남자 한분이다.
누님은 어릴 적에 뜨거운 물에 얼굴과 손에 화상을 입어 얼굴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오른손의 손가락이 약지와 새끼손가락만 있었던 기억이 있다. 난 그 누나의 얼굴을 대면하기 무척 힘들었다. 아니 무서웠다. 그러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주 누님과 마주치고 누님이 다른 장애인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대하기 힘든 얼굴이지만 자주대하니 처음에 느꼈던 무서움 보다는 누님이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야할 힘든 삶의 무게가 먼저 느껴졌다.
얼마 전 개봉한 다크나이트는 올해 만들어진 허리우드 영화중에 최고의 수작이라 평할만하다. 장대한 스케일과 배우들의 연기 특히 조커(히스 레저분)를 보고 있으면 악(惡)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 다크나이트는 미국에서 새로운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이 영화는 단순한 배트맨의 활극영화는 아니다. 절대 악(惡) 조커와 절대 선(善) 배트맨(크리스컨 베일분) 사이에서 인간을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또 얼마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가를 감독(크리스토퍼 놀란)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난 근래에 보기 드문 명작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안면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편견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영화는 우리에게 평소 익숙하지 않은 안면장애인들에 대한 느낌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커의 입이 찍어져서 항상 웃고 있는 듯 하다. 화장이 더욱더 악마적이게 해준다든가 영화의 후반부에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화상당한 얼굴과 그렇지 않은 얼굴은 선과 악의 판정기준이 되어 버린다. 이 장면에 대한 설명은 영화에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미리 설명해 드릴 순 없지만…. 영화에서 선(善)은 화상당하지 않은 얼굴이고 악(惡)은 화상을 입어서 상처 받은 얼굴로 나온다.
앞에서 이야기 한 누님은 재활원생활을 하면서 불편하지 않은 나머지부분을 이용해 항상 불편한 다른 친구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기억이 있다. 내가 자라서 만난 누님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친구는 본인의 이런 모습을 타인들에게 보여주어서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장애처럼 그들의 장애도 본인의 선택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 그들의 장애는 악마의 표식처럼 영화에서 자주 이용하는지 그리고 그런 편견은 사회에서 재생산되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누님은 항상 외출을 할 땐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하고 외출을 항상 했다. 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더운 날에도 이들에게 얼굴을 가리라고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그 누님을 만나면 사과하고 싶다.
처음 누님을 만났을 때 나의 약간 움찔한 내색으로 누님에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