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연못 사진. ⓒdaum cafe '영원에서 영원으로'

제가 등장하는 성경은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연못 주변입니다. 이 연못에서 나는 치유 받았습니다. 나의 질병은 38년이 된 뇌졸중이었습니다. 제가 늘 기거하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House of Mercy)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베데스다 연못은 어떠한 곳이었을까요?

내가 알고 있는 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문 중의 하나인 스테반 문 (일명 사자문)에서 성 내부 쪽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연못은 예수님 당시에는 성의 북쪽 벽 밖 가까운 곳이었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 (Sheep Gate, 느 3:1, 요 5:2) 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연못은 본래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진 길이 100 ~110m, 너비 62 ~ 80m, 그리고 깊이 7 ~ 8m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곳은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해서 환자들이 늘 집합되는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곳에서 가끔 물이 동하는 신비스런 현상 때문입니다. 두 저수지 사이의 분리벽 아래쪽에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한 통로가 발견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북쪽 저수지로부터 물이 남쪽 저수지로 흐르게 고안된 것입니다. 신약학자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이 장치를 가끔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하는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북쪽 저수지에 일정한 양의 물이 찰 때마다 병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남쪽의 목욕장으로 흘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왜 베데스다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는지?

발굴을 통해 베데스다의 유적은 서기전 200년경 최초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기 1세기에는 저수지와는 별도로 깨끗한 물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 급수대도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저수 시설은 단순히 성전 제사를 위한 도살에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로마 시대 도시들에 널리 퍼져 있었던 종합병원 아스클레페이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베데스다가 원래 히브리어로 베잇트 하스다, 즉 ‘자비의 전당’이라는 뜻도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또한 서기 2세기 폼페이아 루킬리아라 불리는 한 로마 여인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그 대가로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이 이곳서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서기 5세기 중엽 베데스다를 방문했던 한 순례자는 이곳의 기념교회를 ‘장애인의 교회’로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기 6세기부터는 이곳이 마리아의 생가라는 전승이 생겨났고 다섯 개의 행각 중 하나에 이를 기념하는 교회가 건설되었습니다. 서기 1100년경 십자군들은 이곳에 마리아의 모친을 기념하는 성 안나 교회를 세웠고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십자군 시대의 건물로 손꼽힙니다.

베데스다 연못 사진. ⓒdaum cafe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제 내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야 할 시간입니다. 내가 뇌졸중(腦卒中)을 알게 된지 벌써 36년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뇌졸중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예기치 못한 시간에 내 몸에 찾아왔고, 나는 나의 육신조차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방안에서 걷는 일,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들조차 나에게는 평범한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몸부림쳐야만 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의 질병은 점점 깊어져가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적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 베데스다 연못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식구들에게 희소식이 되었습니다. 천사아 베데스다 연못에 와서 물을 움직일 때, 그 물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치유 받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때로부터 베데스다 연못가에 나의 거처(居處)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베데스다 연못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연못 주위에는 나 혼자 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와 처치가 비슷한 환자들, 중증 환자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 소식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가장 좋은 자리 - 베데스다 연못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자리를 펴고 누어있거나 앉아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들의 시선은 오직 베데스다 연못만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쳐다보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도 한 것은, 이들이 이곳에 온 것은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치러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기도 하고, 인사도 하려고 하였지만, 베데스다 연못만을 향한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눈동자에는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물만이 가득 고여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못물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치유를 받고 뛰어나갔습니다. 그의 얼굴은 다시 베데스다 연못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희망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연못물이 한 번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누군가가 치유를 받고, 또 누군가가 치유를 받고, 또 누군가가 치유를 받고 이렇게 반복되기를 계속하고…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과 치유 받는 일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고 또 그러한 일이 반복되고….

베데스다 연못 사진. ⓒdaum cafe '영원에서 영원으로'

어느 새, 30여년이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30여년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30여년 간 베데스다 연못을 지키면서 나는 치유 받아야 할 사람에서 치유 받는 사람을 축하해주는 구경꾼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나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지만, 베데스다 연못과는 무관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데스 연못이 움직여도, 연못물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질병이 점점 중증화 되어가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사실 더욱더 지원이 필요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한 날들이 하루하루 흘러갈 즈음.

어떤 낯선 사람이 내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참으로 낯선 언어였습니다. 38년간 나에게 다가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피해의식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나의 중증 장애는 장애현장에서도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장애인은 경계선(Boundary)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치료와 지원이 효과가 있었다는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중증 장애인에게 다가와 말을 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에게 “낫기를 원하느냐?”묻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새삼 놀랐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지? 그러던 사이에 내 입에서는 나도 예상치 못한 말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항상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연못물에 들어가곤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 사진. ⓒdaum cafe '영원에서 영원으로'

왜 나는 고쳐달라고 말을 못했는지? 나 자신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치유를 포기했고, 치유를 포기한 이유가 주변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여튼 나의 입에서는 절망 섞인 말이 나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장애인들 안에도 차별이 많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장애에 대해 잘 모르면서 장애인들끼리 폄하하는 일이 있습니다.

가끔 장애인들 간에 연대는 있지만, 실제로 보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애만을 두드러지게 하거나 혹은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만이 전체를 대변하는 조직체인 것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 작신 역시 베데스다 연못에 있으면서 다른 장애인에 대하여, 다른 장애인의 현실에 대하여, 다른 장애인의 아픔에 대하여 잘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원이 없어서 절망하고 있노라는 나의 대답에 그분은 명령 했습니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라.” 그 분은 중증 장애로 인하여 절망하고 있는 내 마음 깊은 속에서 치유 받고 싶은 희망을 보았나 봅니다. 그는 나의 영혼을 건드렸습니다. 그가 명령하자마자, 그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베데스다 연못물의 움직이는 것과 무관하게 38년간의 쇠사슬은 나에게 떨어져 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연령, 성별, 장애정도, 장애범주에 따라 필요로 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입니다. 보편적 지원(universal support)라는 미명하에 일률적인 지원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활동보조시간이 동일할 수 있습니까? 사실 이것이 바로 차별입니다. 어떤 장애인에게는 더 많은 지원이 요구되고, 어떤 장애인에게는 다양한 지원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일률적인 지원은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는 차별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중증 장애로 인하여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장애로 인하여 절망하는 듯 했지만, 사실 희망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던 분에 의하여 나는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적능력이 낮은 장애인에게 지체장애인의 능력을 요구하면 차별입니다. 지적능력이 낮은 장애인에 사회에의 적응력과 높은 기술의 연마를 요구하면 이는 차별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인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적응일 뿐입니다. 장애정도, 개별적인 요구를 무시하는 한, 장애인 차별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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