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려니 언젠가는 필자도 죽기 전에 한 번은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작은 기대감을 가질 때가 있다. 어느 날 한 술자리에서 후배가 "요즘 인공 눈 수술에 성공하여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시력을 되찾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럼 안내견이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지난 기사의 일부가 뇌리에 스쳤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공 눈을 시술하는 데 성공하여 물체와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원시적인 시력을 갖게 돼 안내견 없이 다니는 등의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정말 시각장애인의 일상생활에 안내견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나 높았던가. 다시 생각하게 만든 기사였다.

고작 전 세계 시각장애인의 0.1%에 지나지 않는 안내견 사용자들의 불편함을 해소시켜 주기 위하여 인공 눈을 개발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위와 같은 내용이 기사화 될 수 있었을까! 인공 눈이 실제로 시각장애인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오히려 안내견보다는 대다수의 시각장애인이 활용하고 있는 특수학교(맹학교) 또는 복지관, 흰지팡이 사용 등의 필요성에 대하여 거론되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이 기사를 얼마나 신뢰했을까?

시각장애인에게 당장 눈을 뜰 수 있다는 기사 보다 더 기분 좋은 내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희망의 감정을 느끼거나 기대감을 갖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시각장애라는 기능적 부분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모든 현상을 개발자 중심에서만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시각의 장애를 기능적으로만 본다면 대체물로 안내견 이상의 것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을 해본다. 보행 도구로 제일 많이 사용하는 흰지팡이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시력을 보조해준다는 것 보다는 다른 감각 활용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고 맹학교나 복지관을 논하기에는 단지 기능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단계에서 그 주제가 광범위해지므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시각장애인의 보행 도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윈도우즈 스크린리더(시각장애인용 화면 읽기 프로그램)의 초기 개발 단계를 돌아보자.

windows98 운영체제가 모든 컴퓨터의 기반을 이루고 있을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이 복잡한 화면을 읽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못하여 간단한 구조의 도스 운영체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처음으로 윈도우 스크린리더가 출시되었는데 당시 시각장애인들의 기대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실망감 역시 빨리 찾아왔다.

화면을 읽어주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화면을 어떻게 읽어주어야 하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기술력이 미진하여 생긴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시각장애인 당사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인터페이스였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재 한국의 스크린리더 시장은 한 기업이 주도적으로 판매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기업이 시각장애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개발자가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들의 필요와 요구를 프로그램에 그대로 반영하므로 같은 처지의 시각장애인 유저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시각장애인용 물품 및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당사자가 인력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그 물건을 사용하고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사자의 입장을 배제시키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인공 눈 수술의 성공적인 성과가 안내견의 필요 여부를 논해야 할 만큼 그 사실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안내견과 관계된 당사자 또는 훈련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내견이 지닌 기능적, 사회적, 심리적 효과를 대신할 정도로 시력을 되찾았다고 서로 동의하는 순간 안내견은 사라져도 좋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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