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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내견을 선택한 이유?

육체적으로 바빠졌지만 정신적으로 평온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07-22 15:17:27
돈이 없어 굶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그럼 앞 못 보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볼 수 있는 눈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할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돈이 필요하지만 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냥 굶어 죽게 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과 친해지면 된다.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수술을 통해 당장 앞을 볼 수 없다면 그냥 한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거나 눈이 보이는 대상을 만나 친해지면서 살 길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절대로 공짜는 없다'는 말을 전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돈이 필요해서 만난 사람에게는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 다른 무언가를 제공해야 할 텐데, 예컨대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내어준다거나 몸에 익히고 있는 재능을 보여주는 것 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크게 생각하면 대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시각장애인도 자신의 보이지 않는 눈을 누군가가 대신하여 주었다면 당연히 그러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적 관계가 맥락 안에서 문화적, 교육적, 인지적으로 구성되어 발전한 결과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복지 사회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럼 왜 장애인을 위한 복지 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할까?

신체적 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손상당한 기능의 제한성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장애인의 재활의 필요성에 대한 가치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발상이야말로 장애인당사자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큰 대가를 지불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볼 수 없어서 요리를 할 수 없다는 시각장애인이 해당 관청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때 볼 수 없는 기능적 제한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 볼 수 있는 요리사는 시각장애인의 모든 요리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해당 관청은 지원 중심의 서비스로 일관해야 하는데 궁극적으로는 그 서비스를 위한 투자에 비해 자립을 위한 지불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제한된 기능을 단순한 손상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대체 가능한 기능에 포커스를 맞추어 교육을 전제로 전문가를 일시적으로 파견한다면 그는 시각장애인이 다른 감각(촉각, 미각, 후각 등)을 이용하여 스스로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지도할 것이다. 그러면 해당 관청은 효과적인 인력 활용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받은 시각장애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 쓸 이유가 없어지게 되니 지불해야 할 대가의 양도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의 재활 서비스 및 특수교육이 중요한 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장애인 스스로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의 선택폭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한 교육 및 복지제도의 패러다임은 과거 무조건적인 지원 중심에서 점점 사회 통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호 관계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의 기술 문명이 발전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장애인들은 기능을 보충받기 위하여 물질적 또는 정신적인 대가를 지불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때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그 대가의 수준을 결정짓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이 변화에 안내견도 미세하지만 일정 부분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에 긴 이야기를 앞에 나열하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즉 안내견 보행이 흰지팡이로 보행할 때 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사실에는 일정부분 수긍하고 만족하지만 관리에 대한 책임이 항상 뒤따른다는 점에서 주저하거나 포기해버리고 만다.

필자 역시 안내견을 신청할 때 위와 같은 이유로 갈등 속에서 오래 고민했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안내견을 선택하게 된 것은 어차피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정신적 대가 보다 육체적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더욱 마음 편하게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밥 챙겨주고, 털 손질 해주고, 시간 맞추어 배변하도록 밖에 나가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공공장소에서 출입 거부하면 언성도 높여야 하고...필자는 마치 유치원생 아이의 아빠가 된 것처럼 하루 중 일정 시간은 오로지 안내견을 위해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이 생활에 대하여 후회한 적은 없다. 비록 안내견이 곁에 있어 육체적으로는 바빠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한 안내견으로 인해 생긴 일상은 당연히 내 곁에 머물러 있는 녀석을 위해 지불해야 할 육체적 대가에 불과하다. 즉,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왔던 강토나 지금 함께하고 있는 채송이는 내가 기꺼이 육체적 대가를 지불할 만큼의 행복과 사랑을 충분히 제공하였기에 더 이상 우리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이해타산을 논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합의가 끝난 상태라고 감히 자신한다.

필자에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적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라고 답할 것이다. 이 정신적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대상들은 결코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혈육으로 얽혀진 내 가족,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내 직장의 모든 분들, 친한 친구들, 앞으로 생길 나의 새로운 가족들은 내 평생의 가장 소중한 신의 섭리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진 장애를 고스란히 떠맡아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무의식중에 뇌리에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 마다 다시 생각을 정리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을 찾아보지만 이미 도움에 익숙해져 버린 현 상황을 돌리기 위한 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족 또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 지라도 도움을 청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어떤 종류가 되었든 눈치를 보게 되거나 때로는 과대망상에 빠져 비굴함을 보일 때도 많다. 이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를 정신적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신적 대가를 덜 지불하기 위하여 필자는 컴퓨터를 배우고, 점자를 읽고, 안내견을 받았다. 덕분에 내 몸은 더욱 피곤해졌다.

오늘 날씨와 주말에 있을 주요 공연 정보와 재미있는 신간 도서와 쇼핑 리스트 등을 확인하기 위해 옆 친구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나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자 온갖 사진과 그림으로 도배되어 잘 알아볼 수도 없는 웹페이지에 접속하여 힘들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읽어줄 사람을 요청하는 대신 그 두꺼운 점자 시험지를 앞에 놓고 손가락으로 세밀히 짚어가며 수정도 해 가면서 다른 사람의 1.5 배가 넘는 시간동안 문제도 풀었다.

주말 오후에 산책을 즐기기 위해 바쁠 것 같은 가족을 조르는 대신 채송이 밥 한 끼 챙기고 시원하게 배변 시키고 나니 시간은 다소 지체 되었으되 마음속에는 기쁨만 가득하다.

컴퓨터에 앉아 직접 정보를 검색하고, 점자를 읽고 쓰며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혼자 외출을 즐길 수 있는 현재의 내 삶은, 비록 이 과정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어려운 과제들과 부딪치며 육체적 고통도 겪었지만, 시각장애를 이유로 타인에게 시각이 필요한 일들을 대신 부탁하지 않아도 되어 정신적 대가를 덜 지불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할 뿐이다.

장애인을 위한 교육 및 복지는 당사자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교육 및 복지 수준이 올바른 방향으로 정착된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는 서로에게 정신적 대가를 덜 지불해도 되며 이는 곧 국가 경쟁력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양성되고 있는 안내견의 수요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그들 존재 자체가 궁극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필자의 바람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날, 안내견의 공공장소 출입 거부가 단순한 시각장애인의 문제에서만 논의되는 비극적 현실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유석종 (guidedog82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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