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마니 기질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 친구들 대개는 나로 인하여 흡연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청자가 최고이던 시절, 옛날도 아주 먼 옛날 담배 맛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나는 청자 필 때 친구들은 환희 한 가치 씩 입에 물려주었다. 순진한 친구들은 청자와 환희의 품질 차이를 배워 나가며 차츰 폼 깨나 잡는 끽연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학교 어디에나 있던 할매 집에서, 꼬방 집에서, 만화가게에서 마음만 먹으면 담배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십년을 넘게 담배를 피웠다. 가래가 끓고 가끔씩 호흡이 가빠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청자에서 은하수, 한산도. 그리고 붉은 태양이 그려져 있던 선. 고급 휠타라는 이름의 거북선. 시대를 달리하며 담배는 늘 새롭게 세상에 나왔지만, 까짓 담뱃값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팔팔 올림픽. 전매청에서 그 호기를 놓칠 리 없지. 올림픽을 기념하여 팔팔 골드라는 신품종을 출시하였다. 폼 나는 금빛 포장에,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체 끊을 수 없을 정도로 타르 향이 매력적인 담배였다. 프레스토 트렁크에 팔팔 골드를 보루로 싣고 다니며 애연가임을 과시하는 재미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흡연 연대로 보아 이십 년을 채웠던 어느 새벽. 습관처럼 담배 한 대를 빼어 물었다. 빈속의 소주 한 잔. 빈속의 담배 한 대. 비어 있는 폐 깊숙이 빨아들이는 그 맛을 무엇에 비유할까? 그 자극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날은 조금 달랐다. 담배를 빼어 무는 순간, 정말 담배가 싫어졌다. 담배를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바다에(당시 외진 바닷가에서 날품을 팔고 있었다)나섰다. 가슴 가득히 들이마셨던 그 맑은 공기. 니코틴에 찌들었던 내 폐는 그 날 새벽, 나도 모르게 담배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십년. 나로 인하여 담배를 배웠던 친구들, 그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연자의 공통점 하나. 어지간해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흡연의 변은 거의 똑같다. 담배가 주는 여유 때문에, 담배의 구수한 냄새가 너무 좋아서, 채근담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구라 꾼 말이다. 저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비슷한 이유들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완고함. 나는 그 완고함을 알고 있기에 절대로 금연을 권고하지 않는다. 누군가 옆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도 전혀 싫은 기색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 담배를 접하게 되었던 동기야 여러 가지 많았지만 그 중에서 아버지의 흡연이 준 영향이 적지 않았다. 늘 방안에 놓여있던 담뱃갑. 슬쩍 한가치 빼서 나왔던 숱한 기억. 아버지의 흡연을 보면서 미래의 흡연자로 연습이 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일전,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유명여성 10인의 금연 론 이라는 에세이집이 출간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소설가 신경숙. 스무 살 때 아버지 담배를 몰래 딱 한 대 피우다가 들켰고, 세월이 흐른 다음 그 때의 그 어긋남이 너무도 고맙다 고백하고 있다. 화가 김점선. 예술은 인생 자체를 사랑하는 데서 출발 하지만 담배 피우기는 인생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 한다라고 말한다.

유인경 뉴스메이커 편집위원이라고 아시는지?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가 말하는 담배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절절해 잠시 옮긴다. 자신을 임신했던 어머니가 입덧에 좋다고 배운 담배가 어머니의 평생을 함께 했다고 고백하면서 담배를 못 끊게 해드린 자신에게 화가 났고 지구상의 담배를 모두 태워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모성애를 누를 만큼 자극적이고 무서운 담배.

흡연은 기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기호라 말하기엔 그 폐해가 너무도 크고 많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 나이도록 살아오면서 잘 한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금연을 꼽겠다.

아들아이. 비흡연가다. 아들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왜 담배를 안 피우냐?” “그냥 싫어서요.”

아비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 교육이 되었는지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아들과 내가 너무나 좋다.

담배. 한번쯤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여자와 남자의 구분을 짓는 건 아니지만 특히 여자 분 들. 자신의 흡연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유전처럼 전이된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엄마가 흡연을 하면 딸이 흡연을 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남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여자 분들에게만은 정말 금연하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담배에는 여유도, 구수한 냄새도 없다. 담배는 오직 자살로 가는 횃불일 뿐이다. 담배 한 대가 간절히 생각 날 때면 수채화처럼 펼쳐진 앞산을 보자. 온 산을 초록으로 물들이며 향기를 날리는 꽃과 나무들이 손가락에 고약한 니코틴을 남기며 타들어가는 죽음의 횃불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나로 인하여 흡연의 세계에 입문한 모든 친구들에게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1958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시절, 전후 베이비붐 1세대답게 오전반 오후반을 넘어 저녁 반까지 나뉠 정도로 유달리 많은 또래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늘 그렇듯 살아간다는 것은 주연과 조연의 적절한 배치. 안타깝지만 그 많은 또래들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는 그림자 인생이었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훈장으로 여기는 민주화 시절도 공중전화박스에 숨어 지켜보는 것으로 흘려보냈고, 그때의 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참여정부의 시대도 내게 주어진 역은 노동과 식량을 바꾸는데 익숙한 도시노동자.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주연들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그들에게 글을 읽는 작은 재미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