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이후 미국에서는 징병제가 사라졌으며 미군은 모병제로 운영이 되고 있다. 현재 군에서 복무하고 있는 미군들은 모두 직업군인들이다. 아프칸과 이라크 파병으로 전상자가 늘어나며 군에 지원하는 모병의 수가 줄어들자 연방정부에서는 이들에게 지급하는 보너스 금액을 인상하여 지급하고 있다.

미군에 입대하면 현금보너스를 받는다. 그후 근무연한을 연장할 때마다 추가 보너스를 받게 된다. 직업군인이니만큼 연봉과 각종 혜택 등을 포함하여 직업인의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 군에 지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는 형편이 어려운 집안이나 이민가정 출신이 군에 간다. 영주권자도 미군입대가 가능하며 이들에게는 우선적으로 시민권이 부여된다.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지지하는 미국민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빨리 명분없는 전쟁에서 발을 빼고 미군이 철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군을 지지하는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기도 하고 집앞의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놓은 이들도 있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장병들은 지역사회에서 환대를 받으며 전사한 장병을 위한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뤄진다.

며칠전 고국판 신문에서 촛불시위를 막는 전경들의 어려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대부분의 전경들은 시위따위를 막기위하여 자원입대한 직업경찰이 아니라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하여 복무하는 젊은이들이다. 진압복을 벗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으면 그들은 여느 젊은이들과 다름없는 우리들의 이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경들을 때리고자 마음먹고 나온 사람들이 아닌가. 원칙없는 진압을 일삼는 정부에게도 책임은 있다.

민주주의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가 아니다. 조용한 다수가 거칠고 목소리 큰 소수에게 밀리고 시달리는 사회는 결코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사회의 모습이 아니지 싶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이들이 법과 질서를 지킬때만 가능한 일이다. 파란불에 마음놓고 차를 달릴 수 있는 것은 나를 가로지르는 길의 건널목에는 빨간불이 켜져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차법이나 장애인 의무고용제 등의 장애인 관련법들도 잘 지켜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지하철 승강기에서 떨어져 죽어도 아무도 그를 위해서는 촛불을 켜지 않는다. 중앙정부조차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파업에 나서지 않으며 장애인 관련법 위반에 대해서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도 없다.

미국산 소고기를 핑계로 진보와 보수는 이념투쟁을 하고 있고 이 와중에 아직도 기본적인 민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관심권 밖에 놓여있다.

[토론합시다]장애인개발원과 장애인당사자주의, 어떻게 보십니까?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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