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인네들은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분위기속에서 잘 참아서 가슴 속에 묻어 두면 ‘한’이 되고 잘 못 참아서 폭발하면 ‘화병’이 되었다. 화병(火病)은 이른바 속에 천불이 난다는 울화병(정신병)이다.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에서는 화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보고 ‘정신과질환 통계분류(DSM)’에 ‘화병(Hwa-byung)’이라는 한국 병명 그대로 등록하였다고 한다.

SBS 물병자리 타이틀. ⓒSBS

우리사회에서도 언제부터인가 화병으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분석에 의하면 화병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2004년 2830명, 2005년 3096명 2006년 3663명, 2007년 4823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동아일보 2008-06-28)

화병의 원인은 학업, 취업, 배우자, 자녀, 본인의 성격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같은 요인들과 부딪히는 심한 스트레스가 결국은 화병이 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TV드라마가 화병의 원인으로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아침드라마 ‘물병자리’도 그 화병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20여 년 전 추운 겨울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동시설(고아원)에 갓난쟁이 여자애 둘이 들어온다. 먼저 들어 온 애가 명은영(하주희)이고 나중에 들어 온 애가 명은서(임정은)다. 명 씨는 고아원 원장의 성이고 물병자리는 1월생의 별자리다.

은영과 은서는 언니 동생으로 자랐는데 은서가 그림도 더 잘 그리고 더 착해서 은영은 사사건건 은서가 못 마땅하다. 은서가 미술전에 1등을 해서 미대에 입학을 하자 은영도 다음해에 은서가 다니는 미대에 입학을 한다.

은서가 다니는 같은 과에 제대한 민우가 복학을 하고 은서를 찾아 온 은영이 민우를 보고 첫눈에 반했으나 민우는 은서를 좋아한다. 실의에 빠진 은영을 구해 준 것은 태수였다.

민우는 화장품회사 이사장인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반대해서 집을 나온 처지인데 은서를 인사시키려 어머니를 찾아 갔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만나지 못한다. 민우는 졸업 후 시골에서 은서와 살림을 차리고 그림을 그리며 아들 유빈이를 낳고 행복해 한다. 민우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 밑에서 일하는 이모가 이제 집으로 들어오라면서 어머니의 반지를 전해준다.

은영은 태수와 사는데 태수는 조폭(?)의 두목인지 어느 날 형사들이 들이닥치자 태수는 은영을 인질로 삼았다가 경찰에 잡혀간다. 혼자 남은 은영이 은서를 찾아가자 은서는 민우 어머니가 허락했다며 서울로 가는 차에 은영이 함께 타고 간다.

민우가 운전하는 차 속에서 은영이 은서의 반지를 쳐다보자 은서는 끼어보라며 은영에게 건네주고 은영이 반지를 낀 순간 차는 트럭과 부딪혀 곤두박질친다. 민우는 죽고 은서와 은영 그리고 유빈이는 병원으로 실려 간다. 민우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동생 민호는 민우의 죽음에 슬퍼하다가 반지를 낀 은영을 민우의 여자로 알고 받아들인다.

은서는 심한 부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서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은영은 자신을 민우의 여자로 아는 식구들을 보면서 브로커를 시켜 은서를 시골 요양원으로 보내 버린다. 은서는 요양원에서 의사 동하를 만나 조금씩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은영은 화장품 디자인을 습작하면서 이모의 눈에 띄어 디자인 실장으로 회사에서 일하게 되고, 이모는 정신병원에 입원중인 교수를 찾아 갔다가 은서의 그림을 보고는 은서를 데려온다. 은영을 알아보지 못하는 은서를 본 은영은 은서를 화장품회사에서 내보내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리다가 예전의 브로커에게 은서를 치게 한다.

은서는 달려오는 차를 보고 예전의 교통사고 기억이 떠올라 졸도를 하고 다시 깨어나면서

지난 기억을 떠올린다. 동하의 노력으로 은서는 기억을 되찾고 은영이 자기대신 유빈이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호도 형수는 은영이 아니라 은서라는 것을 눈치 채자 은영은 친자확인을 하겠다고 나선다.

유전자 검사 15개 항목에서 은영이 13개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은영은 집을 나가고 대신 은서가 집으로 들어온다. 집을 나간 은영은 수녀원에서 생모의 주소를 받아들고 찾아가는데 은영의 생모는 공사장 함바집에서 일을 하면서 병든 남편을 돌보고 있었다. 생모는 은영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은서의 안부를 묻는데 은서 엄마는 은영의 이모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100회가 넘는 물병자리의 줄거리다. 물병자리의 시청자게시판은 연일 시청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대부분이 느린 전개와 앞뒤가 안 맞는 구성을 성토하는 아우성이다.

느린 전개에는 시도 때도 없이 끔찍한 교통사고 회상장면을 보여주면서 ‘네, 아니에요. 다음에요’만 되풀이하는 은서의 대사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났으면 동승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만도 한데 아무도 은서의 존재는 거덜 떠 보지도 않고, 아들이 또는 형이 죽었는데도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민우가 살던 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그리고 민우와 은서가 철없는 애들도 아니고 아들까지 낳고 살았다면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는 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은서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요양원으로 보내졌는데 은서는 지문도 주민등록도 없었단 말인가.

필자는 장애인복지 일을 하는 사람이다. 민우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트럭을 피하려다 언덕 아래로 몇 바퀴나 굴러 민우는 그 자리에서 숨졌는데 은영은 잠시 목에 깁스만 했다가 풀었고, 은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억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말짱하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의 교통사고는 죽거나 아니면 말짱하다는 것이 공식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많은 교통사고 장애인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은영이 찾아간 생모는 딸의 출생을 기뻐하던 아버지가 추락하여 일어나지 못한다며 자리보전 하고 누웠는데 누운 아버지는 연신 왼쪽 얼굴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사고였다면 하다못해 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좋으련만 누운 사람이 얼굴은 왜 그렇게 실룩거리고 있는 지. ‘저 연기 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하다.

은영이 찾아 간 함바집은 거대한 건설 현장이었는데 생부가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면서 안전모도 없이 무방비 상태의 은영이 공사장을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다는 것일까.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경찰은 경찰관련 드라마가 아닌 이상 하나같이 왜 그렇게 멍청한지. 뺑소니 사고의 범인은 절대 잡지 못하고, 소매치기도 못 잡고, 브로커가 죽었고 그에게서 은영이가 준 수표가 나왔는데도 경찰은 변죽만 울리고 있다.

다른 시청자들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안전의식을 무시한 드라마의 전개방식은 지적 받아 마땅하다. 공사판은 애들 놀이터도 방송사의 심심풀이 이야기 장소도 아니다”(gomtinga)

“은영은 살인방화미수(가스를 틀어놓아서 은서를 살해하려던 행위)는 물론 여기는 불법주거침입도 포함하며, 살인교사죄(자동차)의 중죄를 저질렀다. 법을 어길 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고 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jnjosia)

드라마 보다 시청자게시판이 더 재미있다. 시청자들은 물병자리는 골빈자리라면서 물병자리를 보고 너무 끔찍해서 밤잠을 못 잤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를 대신 써 놓기도 하는데, 전파낭비니 빨리 끝내라는 아우성이 난리도 아니다.

아무리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그 드라마 속에 울고 웃는 우리네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온갖 못된 짓을 다해놓고도 마지막에 가서는 다 용서하는 대천 한바다 같은 사람들만 나온다. 제발 보는 사람 화병 돋우게 하지 말고 죄를 지었으면 죄에 합당한 벌도 받게 하라.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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