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화(脫施設化, Deinstitutionalization)는 이미 낡은 주제가 되었다. 쓸모없는 주제가 아니라 논쟁거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누군가가 시설(?)을 이야기 하면 그는 몰매맞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탈시설화 논쟁이 시설의 비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생활자들의 인권 문제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논제를 먼저 지적하는 이유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왜곡된 현실을 언급하기 위해서이다. 논리학에 의하면, 집단 전체를 보면서 집단 구성원을 집단전체와 동일시하거나, 집단 내의 구성원 한 사람을 보면서 집단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리(?)가 폭로되곤 한다. 그러나 시설을 운영하는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결코 아니다. 탈시설화를 주장하지만, 시설을 벗어나려면 갈 곳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데 무작정 탈시설화를 주장한다면, 이는 탈시설화가 아니라 무시설화를 주장하는 격이다.

여전히 중증장애인, 지적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들 중에는 시설을 찾아 방황하는 분들이 적지않다는 사실이다. 시설에서 부터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시설을 필요로 하는 욕구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서 누군가가 가진 욕구 자체를 시시비비해서는 안된다. 밥을 먹는데, 왜 너는 라면을 먹지않느냐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1950년 이후 전쟁이 종료된 시점에서 한국의 현실은 참담했다. 전쟁고아, 장애인, 노숙자 등이 한국의 현장이었다. 이 때, 정부의 지원도 없이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서 소위 시설을 운영했던 분들이 한국사회복지의 선구자들이었다.필자가 어렸을 때에 주변에 있는 분들의 나의 아버지에게 왜 아들을 시설에 보내지 않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던 상황을 잠시 생각해본다.

초기에 시설을 운영했던 분들은 시설이 무엇인지, 사회복지법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단지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일에 헌신했을 뿐이다. 이러한 일은 분명 사랑의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출발이 정부의 지원과 함께 대규모화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대규모화된 시설은 다양한 종사자의 배치로 인하여 전문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소규모는 열악한 시설, 적은 종사자로 인하여 매일매일 허덕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대규모 시설에서 구조적인 비리가 더 많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렇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필요하듯이, 대규모 시설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0년전부터 지적장애인, 중증장애인을 양육하는 부모들을 만나왔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자녀가 어렸을 때에는 자녀의 장애를 부정하고, 치료하는 일에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중학생 이상이 되면 부모사후의 장애자녀의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법인 시설은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해야만 입소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취약하지 않는 그러나 경계선상에 있는 부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이 부모들는 부모 사후에서 장애자녀가 사회 안에서 당당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종종 그룹홈을 함께 만들되, 5개-10개정도 세우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어느 독지가의 힘에서 사회복지법인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부모들이 힘을 합쳤을 때, 어느 큰 땅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룹홈을 몇개 구입하여 이 재산을 국가에 바친다고 했을 때, 사회복지법인을 형성해서 공적으로 장애자녀의 삶을 돌보아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장애인 부모들도 손수 자신이 바친 헌신이 효율적이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이와 아울러 뉴타운정책(New Town Policy)을 설계할 때에 , 아파트와 공원만 고민하지 말고 장애인과 더불어사는 뉴타운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축하는 아파트의 일부분은 장애아동과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뉴타운 전체가 장애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이곳에 부모들의 소원을 받들어서 아파트의 일부를 성장한 장애인들의 주거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를 바란다.

세월이 가고, 해가 갈수록 더욱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장애인 부모들이다. 최근 장애인복지시설협회(회장:임성만)가 전개하는 소규모주거형태의 보금자리 운동에 적극 동의한다. 아울러 부모들도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어 그들의 자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나아가 탈시설화에 버금가는 통합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 이것이 소중한 출발점이 되기를 소원한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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