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생기고난 다음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장애로 살아가기에 너무나 열악한 현실이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알게 되면서 비로소 이 땅의 장애인으로의 척박한 삶을 새로운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누군가의 도움이 항상 있어야 하고, 제도적인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지만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수 씨라는 이름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다.

김성진 31세, 뇌성마비 1급. 김정수 39세, 지체장애 1급. 시흥시 정왕동의 이주민 단지에 작은방 하나를 세 얻어 살고 있는 두 사람은 형제다. 거리에 방치된 성진 씨를 정수 씨가 기꺼이 동생으로 받아들여 돈독한 우애를 쌓으니 피를 나눈 친형제인들 이보다 우애가 도타울 수 없다.

정수 씨. 꽁지머리를 하기 위하여 머리에 각별히 신경 쓰는 그의 별명은 발달 장애.

지적 수준이 높고, 아는 게 너무 많아 발달 과다 증세를 보이는 정수 씨의 정신세계를 시샘하여 활동보조인 미화씨가 그렇게 부르고 있다.

시설에 있던 정수 씨가 독립한지 햇수로 수 삼 년. 그동안 정수 씨의 인생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늘아래 외톨이였던 그에게 시흥시장애인 복지관 이용자 모임 민들레회 황효선 회장이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복지관의 최준분 복지사는 기꺼이 그의 후견인이 되어 주셨다.

지난 4월. 시흥시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한국 마사회 시흥시 지부 후원으로 복지관을 이용하는 1,2급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하여 금강산 관광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해맑은 미소만큼 복도 많은 정수 씨, 대상자로 선정되는 행운을 안게 된다.

모두들 정수 씨를 포함하여 대상자로 선정된 인원을 부러워하던 그때, 정수 씨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고향이 강원도 철원 이북이고 참전유공자이시자 장애 3급이신 82세 김갑두 할아버지. 고향땅 한 번 가보시길 그토록 소망하셨지만 장애 1, 2급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기에 애초 선발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정수 씨는 당첨 현장에서 망설임 없이 김 옹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였고, 김 옹께서는 정수 씨의 양보 속에 그토록 소망하시던 고향 방문을 이루셨다. 정수 씨인들 금강산 관광을 하고 싶지 않았겠냐 만은, 처음부터 그의 주장은 고령자순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고, 기쁜 마음에 그 자리에서 김 옹에게 양도한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정수 씨는 곳간 가득 쌀이 가득한 부자이다. 수급자인 정수 씨는 꽤 오래전부터 쌀을 모아 왔다. 곳간에 쌓이는 쌀과 비례하여 정수 씨에게 요즘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그가 쌀을 모으는 이유는 오직 하나. 주변의 딱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해 주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갸륵한 뜻을 가지고 있는 정수 씨지만 그의 능력을 벗어나는 밥을 지을 장소, 부식, 자원봉사 등 산재한 문제가 너무 많아 쉽게 일을 벌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수 씨에게 장애는 결코 비극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얼마든지 주변을 배려하고 무엇인가를 나누어 주고자 노력하는 그를 보면서 장애에 대한 가치가 조금은 변했다. 아름다운 청년, 정수 씨. 그대가 보여주는 사랑으로 인하여 장애가 커다란 사랑(長愛)임을 이제야 겨우 깨닫고 있다.

1958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시절, 전후 베이비붐 1세대답게 오전반 오후반을 넘어 저녁 반까지 나뉠 정도로 유달리 많은 또래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늘 그렇듯 살아간다는 것은 주연과 조연의 적절한 배치. 안타깝지만 그 많은 또래들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는 그림자 인생이었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훈장으로 여기는 민주화 시절도 공중전화박스에 숨어 지켜보는 것으로 흘려보냈고, 그때의 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참여정부의 시대도 내게 주어진 역은 노동과 식량을 바꾸는데 익숙한 도시노동자.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주연들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그들에게 글을 읽는 작은 재미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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