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세계를 마음껏 누비는 탐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신문기자, 뉴스 진행자, 의학박사, 대학교수, 과학자 등 참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매일매일 항상 새로운 꿈과 희망을 마음속에 키우고 상상으로나마 이를 그리던 어린 시절,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야 말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린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어른들보다 훨씬 다양한 꿈을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고, 자기도 모르게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는 배움의 정신이 그들 안에 깃들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점점 현실을 스스로 깨닫다 자신의 처지를 특정 단계의 수준에 포커스를 맞추는 순간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중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 많던 꿈들의 리스트 중에서 한두 가지만 남고 나머지는 스스로 허황된 꿈들로 치부하며 하나하나 지워나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는 한 가지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필자는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꿈들의 리스트를 떠올리며 웃음 짓곤 한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꿈들로 머릿속을 도배해 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세상에 존재함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은 그리 오래 가질 않는다. 너무 빨리 꿈들의 리스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꿈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현실에 맞도록 이상을 추구할 때 필자는 이미 꿈들을 포기한 지 오래였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다시 그 꿈들을 키우기까지 내 삶에는 무미건조한 공백상태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누구나 어렸을 때에는 보고 자라는 대상이 곧 자신의 미래 모델이다. 필자가 보고 자란 대상은 같은 맹학교의 선배들이었으며, 그들의 대부분은 이미 졸업 후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맹학교는 그 특성상 초등학교 어린 아이부터 직업 재활을 위해 개설된 고등부 및 재활반에 소속된 4~50대 이상의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일부 통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에서 고등부에 재학하고 있는 선배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맹학교는 다양한 직업 활동을 위한 교육과정이 편성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진로 탐색 과정에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른 만족스러운 해답을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능력과 적성을 고려한 직업 탐색 과정의 모습을 선배들에게서 보고 자랄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후배들 역시 이를 본받아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다 주기 위한 올바른 모델케이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해결 방안이 모색 되어져야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직업 선택에 대한 동등한 조건을 제공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이 편성될 수 있도록 하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대중 의식 또한 개선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즉 시각장애인 어린이들이 희망찬 꿈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본 신념이 부족한 현실에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모두의 잘못이 아닐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제공 되지 못하는 환경에서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맹학생들에게 가장 큰 적은 바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를 잘 극복한 맹학생들은 사회에서 당당한 한 일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변변치 못한 사회 보장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맹학교 시절 내내 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생활하였으며, 그렇다 보니 쉽게 꿈을 정하지 못하고 허성 세월만 보내던 지난 세월이 너무 후회스럽다. 비로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진지하게 나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이전에도 계속 입시 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남는 시간을 활용하고자 했던 취미활동과 같았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진학에 성공한 뒤 그제야 나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의 변화가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던 듯싶다.

필자가 난데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면서까지 꿈의 문제를 언급한 것은 현재 하고 있는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매칭과도 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후 안내견을 신청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수도 없는 고민을 거듭했었다. 안내견 보행이 확실히 혼자 흰지팡이로 보행할 때 보다는 안전하고 신속하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데 그 이외의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쉽게 긍정적 해답을 이끌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즉, 안내견이 내 인생에 개입되는 순간 모든 일상의 변화가 찾아올 텐데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쉽게 서질 않았다. 그 동안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나만 신경 쓰면 되었지만 안내견이 옆에 있으면 하나 부터 열 까지 모든 책임감을 가지고 그를 챙겨줘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안내견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일상에 가해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최대한 즐기자. 누구나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필자는 더욱 더 민감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맹학교 시절의 생활 패턴 때문이라고 진단 내렸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쉽게 품을 수 없는 환경이 곧 변화에 걸림돌이 됨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고, 지나친 걱정들이 곧 나의 새로운 미래로 내딛는 발목을 잡고 있음을 자각했다.

둘째, 나의 이기심을 버리고 포용하는 마음을 갖자. 처음 안내견에 호기심을 품었을 때에는 책임감에 대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단지 지금 보다 훨씬 안전하고 빠르게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안내 시스템에 욕심이 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곧 깨달았다.

이러한 어리석은 기대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나의 지난 배경을 더듬어 보니 그동안 지나치게 누군가에게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도움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도움을 주는 상생의 관계는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의 손길만을 바라는 파렴치한 행동은 전혀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안내견의 감각활용 능력이 우수하여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면 나는 당연히 온 정성을 다해 안내견을 보살펴 준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렇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할 수 있는가'와 '할 수 없는가' 사이를 고민하기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생각하자. 내 몸 하나도 잘 챙기지 못하는 마당에 괜히 안내견을 데리고 와서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쉽게 결정하지 못할 때 문득 지나치게 할 수 없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정리하여 내가 안내견을 위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만을 떠올리니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에는 항상 무언가를 결정할 때 마다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우선 할 수 있는 목록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안내견 분양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 버리는 젊은이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만일 어렸을 때부터 꿈과 희망을 지니고 추진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었더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안내견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필자도 위와 같은 세 가지 요소들을 머리에 정리하여 안내견을 받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참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무쪼록 한참 호기심 많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우리 어린 시각장애 아동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하겠다. 그래서 최소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안내견과의 생활을 미리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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