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홍보 UCC 공모전 시상식. ⓒ장애인개발원

2008년 4월 우리나라의 모든 장애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장애인차별금지법시행령(이하 장차법)이 드디어 공포 되었다. 물론 이법 하나가 시행된다고 해서 사회에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모든 행태가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장벽을 제거 하는데 기초가 되는 토양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인개발원(구 장애인복지진흥회)에서는 “이법의 시행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장애인 차별금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에 관한 UCC 동영상 공모전'을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란 개최 목적과 아래와 같이 주제를 정하였다.

공모주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는 UCC 동영상,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국민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UCC 동영상.

심사결과 100여 편의 응모작중 대상인 ‘깜박이는 파란불은 파란불이 아니다’를 비롯하여 7편의 수상작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대상을 비롯한 수장작품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들 작품들이 과연 이번 공모전의 목적과 주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만들었는지 심히 의심이 들어 주최측인 장애인개발원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이런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선정을 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우울한 법인가

장차법은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각종 차별을 일삼는 학교, 직장, 사업체, 개인 등에게는 더 이상 장애인을 차별하기가 힘들어짐에 따라 우울한 법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법이지만 누구보다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이다.

하지만 대상인 '깜박이는 파란불은 파란불이 아니다'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작품들이 슬프고 우울한 음악을 바탕으로 깔면서 장애 때문에 힘들게 이동하거나 생활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부각한다.

먼저 대상인 '깜박이는 파란불은 파란불이 아니다'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장애인이란 이유로 취업하기가 힘든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그 장애인의 능력이나 성실성 등 취업에 필요한 모습은 외면한다. 대신에 처음부터 우울한 음악과 함께 줄곧 장애인이 힘들게 거리를 걸어 다니는 모습과 계단을 매우 어렵사리 오르는 장면으로 화면을 가득 채울 뿐이다.

최우수상인 '외출'은 휠체어 타는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의 편의시설 부족을 지적하지만 곳곳을 돌아다니는 장애인은 늘 혼자 일 뿐이다. 집에서도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쓸쓸이 집밖을 나서고 수영장, 쇼핑센터, 거리 등을 다닐 때도 친구나 동료 하나 같이 다니는 법이 없다.

그리고 우수상인 '거꾸로 가는 창현 씨의 하루'도 손발이 불편한 창현 씨가 혼자서 지하철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는 모습을 처량한 음악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비춰주며 동정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이 장면은 지하철에 편의시설이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은 서울의 지하철 7호선 중계역으로 이곳은 지상부터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이다. 그런데 왜 장애인이 편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힘들게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그토록 오랫동안 보여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편의시설 부족을 애기하려 한다면 다른 곳에 얼마든지 있을 텐데 굳이 편의시설이 엄연히 있는 곳을 없는 곳처럼 연출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장애인에게 자리양보안하면 차별금지법위반?

장차법은 장애인들이 무슨 도움이나 특권을 바라는 법이 아니라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법률이다. 그런데 우수상인 '저는 오늘도 차별합니다'에서는 여행을 떠나는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타려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버스가 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자기들만 버스를 타고 가버린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창현 씨의 하루'에서도 지하철에 어느 만삭의 임산부가 탔을 때 아무도 자리를 양보 하려 하지 않자 오히려 몸이 불편한 창현 씨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각장애인에게 버스의 도착을 알려주고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사람들이 어기는 것이 과연 장차법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장차법에 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거나 버스도착을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교전시

장애인공익광고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비장애인과의 끊임없는 비교인데 이번 공모전 수상작들도 역시 예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장려상인 '제노래 들어 보실래요'는 노래를 아주 잘하는 안면 기형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수 지망생 2명이 나란히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수는 외모가 아닌 오직 실력으로 봐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냥 처음부터 장애를 당당히 드러냈다면 그렇게 장애가 눈에 띄지는 않았을 텐데 두 명의 가수 지망생을 보여주면서 다리, 몸, 그리고 얼굴로 천천히 카메라가 옮겨감에 따라 오히려 장애인의 안면장애가 더욱 크게 부각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장애인 혼자가 아니라 비장애인과의 극단적인 비교를 함으로써 사람들은 장애인의 노래보다는 외모의 상이함이 훨신 더 다가오게 된다.

역시 장려상인 '진실의 손'은 화면을 둘로 나눠 두 개 극단적인 손을 보여준다. 한손은 손가락에 장애가 있지만 온갖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손이라고 애기하고 다른 한 손은 장애가 없는 손이지만 남을 시기하고 싸움을 일삼는 손이라며 이 중에 과연 어느 손이 진정 장애를 가진 손이냐고 묻는다.

사람은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 상황 등에 에 따라 달라 질 수 가 있는 것이지 장애 유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극단적인 대비를 시켜 사람을 비교 한다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특정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오히려 왜곡된 장애인상을 전파한다

다시 한번 강조 하지만 장차법은 장애인이 사회에 도움을 바라거나 무슨 특권을 달라고 애원하는 법이 아니다. 다만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온갖 장벽들을 허물어 트려 장애인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법인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개발원은 이런 장차법을 홍보 한다며 UCC 공모전을 통해 장차법을 오히려 왜곡하고 비뚤어진 장애인관을 심어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였다.

장차법은 분명히 장애인들에게 유익한 법임에도 대상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우울한 음악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버스도착을 알려주지 않고 자리양보를 안한다고 묘사하는 것은 장애인은 도와줘야만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극단적인 유형의 예를 들어가며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착한사람, 비장애인=나쁜사람 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장애인개발원은 장차법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장애인의 인식개선을 유도하겠다며 거창하게 UCC공모전을 하였다. 하지만 선정한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존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왜곡되게 묘사하는 처량한 음악, 의존적인 모습, 비장애인과 끊임없는 비교를 그대로 사용한 작품들을 뽑음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에게 장애인의 왜곡된 인식을 전파하고 장차법을 잘못 인식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몰면서 세상을 돌아 다니다가 3년전 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장애인과 관련된 방송 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방송에서 묘사되고 있는 장애인의 왜곡된 모습에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디어속의 장애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방송에 비치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영화,신문,광고,교과서 등 모든 매스미디어로 연구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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