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뒤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나를 고려해서 보건복지가족부 주변에 있는 1층 식당을 정했다고 한다. 나는 알아보라고 했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느냐?" 잠시 후 가능하다고 대답이 왔다. 나는 믿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휠체어를 들면 되지 않겠냐라는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하에서. 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그 식당을 찾아갔다. 역시 1층이었다. 그러나 문턱이 여러 개가 있었다.

식당 종사자는 나에게 다가와서 "저희가 들면 안될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전동휠체어 130Kg, 나의 몸무게 90Kg 합이 220Kg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금방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식당종사자는 식당문턱에 마련되어 있는 몇 개의 턱으로 인하여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를 식당으로 안내 하지 못한 고로 돌연히 불능(disability)을 경험하여 불능자(The Disabled)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 소속 사무관은 “저랑 다른 곳에서 식사하시죠!”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들어가서 식사하세요. 전동휠체어 들어갈 수 있는 식당 찾기 힘들거에요"라고 말하면서 만류했다. 그는 "식당이 이렇게 많은데, 들어갈 식당이 없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강력한 권유에 못 이겨 식당을 찾기로 했다. 20~30분 동안 이 식당, 저 식당을 돌아다녔다. 식사 때를 놓쳐서 뱃속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곳곳마다 가로막고 있는 턱은 우리들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경 쓰지 않고 다녔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심각하군요.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과 다녀보니 이용할 식당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고백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지금 발표한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에 따른 시행령에 의하면 이러한 턱이 사라질까요?" 그는 가만히 있었다. "지금 공포된 시행령으로도 이러한 턱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포된 시행령은 이러한 턱을 방치하도록 만든 법이니까요. 장애인(長愛人)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주변에서 커피도마시고 싶고, 식당에서 밥도 먹고 싶고, 극장이나 연극공연장도 가고 싶고, 시장도 가고 싶은데 갈 수 없거든요. 바로 이러한 일상생활에서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결과로 나온 장차법 시행령은 이러한 차별을 방조하고, 허용하고, 합법화하고 있으니 이것이 되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30-40분이 다되어서야 인근에 설렁탕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한 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한 곳이라도 있었으니. 그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으니. 식탁에서의 통합(Integration on the table)을 이룩하기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3-40분이 걸려야 했다.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밥 한끼를 같이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다니… 나보다 그의 얼굴에는 땀과 시름이 가득했었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장차법 시행령을 만든 사람들이 보건복지가족부 주변이라고 다니면서 한번 체크해 보았다면 이러한 시행령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단순한 휠체어 생활을 경험할 것이 아니라 오늘처럼 실제적인 경험을 했다면 실상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시행령에 나온 근로자 30명이상의 사업장은 대단히 큰 기업이다. 이 정도에 따르면 공단에 위치한 수많은 사업장은 장애인 차별에 대하여 치외법권지역이 된다. 게다가 장애인이 살고 있는 수많은 상점 역시 장애인차별에 대하여 치외법권지역(治外法權地域)이 된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을 차별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장애인 차별을 합법화시킨 법이 장차법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유치원은 공립, 사립 관계없이 장차법에 해당되는 교육기관이 되고 있지만, 보육시설은 민간보육시설만큼은 규모에 관계없이 장차법과 무관한 교육기관으로 고시되어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법이 어디 있는가? 사립유치원을 이용하는 장애아동은 차별받지 않게 되지만, 민간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아동은 차별받아도 관계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당국자는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누구와 협의를 했으며, 누구를 위하여 협의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장차법은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마땅히 차별받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관점에서 협의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와같이 장애인 차별을 허용하는 시행령은 심각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일상생활 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방치하는 일은 옳은 일인가? 아니면 개선되어야 하는가? 지금 시행령이 공포되었다 하여도, 이는 다시금 개정해서 실질적인 시행령이 만들어져 공표되어야 한다.

외국에서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너무도 자주 볼 수 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용을 하든, 아니든 간에 차별의 벽, 차별의 턱은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태도에 관한 것이든, 인식에 관한 것이든, 사회적이든, 관계적이든 간에 턱은 사라져야 한다. 턱(a projection;a prominence;an elevated place;a raised spot;a rise;a hump;a hummock;a knoll;a sill)이 존재하는 한 장애는 장애(障碍)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턱을 방치하고, 장애의 명칭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아야 장애(障碍)는 사라질 수 없다.

차별은 턱이다. 차별을 없애야 통합(統合, Integration)의 가능성이 나타난다. 사회통합은 차별이 없어지는 곳에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차별이 거시적인 부분의 차별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일상생활(Ordinary daily Life)영역에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이요, 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장애(障碍)를 사라지게 하고, 장애(長愛)가 되는 사회가 어서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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