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되자 언니와 떨어져야 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언니는 공부를 못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를 도와줘야 했고 그가 못다 한 피아노를 배워야 했고 그리고 집안일에다가 두 동생을 돌보아야 했던 것이다.

남해 바닷가에서. ⓒ이복남

언니와 떨어진 학교생활은 암담했다. 우선 학교를 다니는 일조차 고역이었다. 중학교는 집 가까이 있어서 걸어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버스를 타야 되는데 가방은 등에 메었지만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버스에서 손잡이 안 잡고도 균형 잡고 버티는 것 잘해요.”

그는 웃었다.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왔기에 이제는 웃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지하철 타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려면 무인 표를 받아야 되는데 무인표 기기를 작동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번은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장애인복지카드를 내밀며 표를 좀 받아달라고 했더니 이런 카드는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장애인카드라고 했더니 미안하다며 표를 받아 주시더군요.”

‘아름다운공동체’에서 군고구마 간식시간. ⓒ이복남

신라대학교 영어영문과에 입학을 했다. 고등학교 때보다는 좀 더 자유로웠다. 공부도 하고 기독교 동아리에서 성격공부도 하면서 통역사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영어공부는 생각만큼 잘 되지가 않았다. 졸업을 하고나서 신라대학의 동시통역과정을 수료하고 영어학습지 텝스(Teps)에 지도교사로 취업을 했다.

2001년 박신원씨가 그를 찾았다. 박신원씨는 그가 처음 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를 찾아와서 위로해주시던 분이었다. 그때부터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영국에 있는 공동체를 둘러 볼 예정인데 통역을 좀 맡아 줄 수 없느냐고 했던 것이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박선생과 함께 영국으로 갔다.

영국에 가보니 공동체를 할 생각이라면 자기네들보다 더 나은 공동체가 있다며 독일 뉘른베르크에 있는 ‘베체헬공동체’를 소개해 주었다. 독일 ‘베체헬공동체’를 찾아 갔다. 공동체의 설립자이신 요크 선생은 그를 처음 보는 순간 “지금보다 더 우수하고 성능이 좋은 의수가 있을 거다”고 했다.

‘아름다운공동체’ 봄나들이. ⓒ이복남

그 후 요크선생의 연락을 받고 다시 독일로 갔다. 그곳에서 새 의수를 맞추었는데 3만 유로(한화 4천만원 정도)의 의수 값은 요크선생이 모금으로 마련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 싶다면 이렇게 잠깐 다녀가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며 1년쯤 그곳에 와 있으라고 했다.

언니는 전문대학 음악과를 졸업하고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함께 가기를 희망하였다. 그와 언니 그리고 또 한사람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베체헬공동체’에서 생활했다. 베체헬에는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150여명이 함께 생활하며 자급자족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아름다운공동체’로 가는 길. ⓒ이복남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은 무엇 무엇은 할 수 없다고 제한을 하거나, 무엇은 할 수 없겠지 하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반면 베체헬에서는 장애인도 다르게 할 수 있는 사람(different abled person)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기 능력과 수준에 맞는 일을 함으로써 성취감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베체헬(Bethsehel) 어린이집(www.fcgb-see.de/kindergarten)

현재 백은영씨는 밀양에서 언니와 함께 ‘아름다운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해외업무로 영국, 독일, 스위스 등 외국의 공동체와 교류하는 민간외교관 역할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찾아오는 장애인이나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일거리를 찾아주는 등 그동안 ‘베체헬공동체’에서 배우고 익힌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백은영씨가 배우고 실천하는 ‘아름다운공동체’가 정말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끝.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